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난 내 인생을 바꾼 독서, 뭐 이런 리스트를 믿지 않는다.
책은 물론 아주 좋은 인류의 벗이지만, 책이 인생을 바꾼다면, 인생은 그렇게 얄팍한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사노라면, 짜릿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독서가 있다.
나에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그런 것이었는데, 1987년 서울시내를 휘젓고 다닌 직후 여름 방학에 읽었던 책이라 더욱 한국사의 질곡에 치를 떨게 되었던 것 같다.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으면서는 정말 뼛속깊이 사무치게 일본을 증오했는데, 몇 달 후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컥,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으면서, 참 우리말을 오롯이 살려쓰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고,
전교조 원년 멤버인 내게 <이오덕 선생님의 글들>은 교사로 사는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대학생 시절, 유시민 세대는 독서활동이 깊었을지 몰라도, 85년 신입생이던 우리는 독서나 학습 활동은 뒷전이고,
매일의 집회와 교문 싸움, 가투로 몇 년을 살았다.
지하 서클 활동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던 나같은 사람은 늘 삶이 뭔가 허전하고 나사빠진 것마냥 허탈한 것이었다.
학과 공부는 삶에서 유리된 낡은 종이 조각에 불과했다고 여겨졌고,
사회과학 서적 학습 때마다, 급하고 서툴게 번역된 판본들을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었지만, 조각난 지식일 뿐인 여러 번 걸러진 내용들은 솔직히 마음에 와 닿기보다는 머릿속에서 흩어져 버리곤 했다. 

가장 나를 울린 글들은 언제나 대자보였고,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쩌렁쩌렁 울리던 선배들과 동료들의 선전선동이었다.
저녁마다 하굣길에는 술집에서 종례를 하기 일쑤였고, 이어서 3주를 마시네, 4주를 마시네, 이런 것을 자랑처럼 떠들던 서글픈 청춘이었다.
어쩌다 연애 감정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기억은 이문세의 노래들과 함께 박제되어버린 풋사랑이었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열패감에 빠져 청춘이 저물기도 전에 결혼과 육아의 생활 속으로 빠져들어버린 것 같다. 

책을 잡은 것은 언제였던가.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책을 손에서 놓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외수에 꽂히면 그를 읽고, 이문열에도 심취했더랬는데, 토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의 소설같은 대작도 충분하진 않지만 읽을 기회를 얻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고 독서 노트를 만들기도 했지만, 십수 번의 이사 끝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 시절의 교재같은 것도 아직 들고 다니는데, 그걸 왜 버렸을까 싶기도 하지만, 내게 청춘시절의 기록이란 한낱 허무하기만 하던 시절이었고, 지워버리고 싶은 기록이었던 것 같다. 

리영희, 백기완 선생의 세례를 받은 세대이기는 유시민이나 나나 마찬가지지만,
그가 감옥에서 탐독하던 서적들을 나이들어 다시 읽는 감상을 적은 이 책을 읽는 일은 솔직히 즐거움만은 아니었다.
책에 폭 빠져들게 만든 글들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사회의 구조적 함정을 드러내 보여주지도 않는다.
개인적 독서 경험을 적은 글들의 위험성이 이 책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최인훈의 <광장>을 몹시 사랑하는데, 그건 나와 같다.
대학 2학년 때, 거의 매일 밤, 최인훈의 <광장>을 마치 성경 읽듯 아무 구절이나 펼쳐서 읽곤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가 인용한, 은혜는 부지런히 만나자던 다짐을 아주 어기고 말았다. 전사한 것이다.
이런, 열 번도 넘게 읽은 대목인데, 또 눈자위가 뜨끈해지고 콧날이 시큰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 만한 감성이 내게, 아직도 남아 있었던가...(154)
이렇게 쓴 구절을 읽으면서 나도 눈자위가 뜨끈하고 콧날이 시큰해 졌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일은 한편 슬픈 일이면서도 한편 몹시 반가운 일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던 그의 항소이유서 인용 구절도 유명하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같은 글을 읽으면서, 푸시킨이나 네크라소프의 이런 구절도 떠올릴 법 하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지극히 평범한 러시아인이다.
수용소에서 보낸 삼천 육백오십삼일 동안 그가 한 일은 오로지 하나, 생존을 위한 투쟁뿐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러시아 남자는 그 절박한 생존 투쟁의 와중에도 나름의 원칙에 따라 인간의 품격을 지킨다. 
슈호프는 절대 꾀병을 부리지 않는다.
편하게 살기 위해 다른 수형자를 밀고하는 비열한 자를 맹렬히 혐오한다.
아무리 허기가 져도 남이 먹고 난 죽 그릇은 핥지 않는다.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도 않는다.
작업을 할 때는 성의있게,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품격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존중할 줄 안다.
정당한 근거없이 누구를 경멸하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다.(185) 

문학의 힘이 이런 것이다. 고은의 '머슴 대길이'처럼, 신분에 상관없이 품격있는 인간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볼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생각하게 된다.
어느 세상에든 진실이 그대로 밝혀지는 날로 가득한 사회는 없는 법이지만, 진실을 이기는 오해와 편견들로 가득한 세상을 발견하는 일은 너무도 쉽다. 한 번 잃어버린 명예를 복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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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맹자가 묘지 근처와 시장통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아 경제적으로 크게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으리라고 추정... 한다고 썼는데, 이것은 조금 잘못일 수도 있다. 맹모삼천지교를 낱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억지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했다는 것은, 상징으로 읽는다. 그 당시엔 '선비'보다는 '무당 그룹의 무인들'과 '상인 그룹'이 먹고 살기 좋은 계급이었다. 그걸 버리고 장래를 내다보고 '선비'로 만든 맹모의 혜안...  
상징을 놓치면, 성경을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의 전철을 밟게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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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bird 2010-07-2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인훈의 광장은 몹시 좋아했습니다. 회색인도 인상깊게 읽었구요. 사실 리영희, 백기완보다는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이 제겐 더 큰 영향을 준 책이었습니다.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병신과 머저리도 제 인생에 중요한 책이었구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에 대한 제 인식을 결정해 준 책이었습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도 좋았구요.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도 한때 흠뻑 젖어 있던 책입니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얼마전에 읽었었는데, 옛날 생각이 나는 정도로 조금은 가벼운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대학 때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나 리영희의 조건 반사의 토끼 같은 짧은 글을 프린트해서 스터디 주제로 삼았던 기억이 납니다.

글샘 2010-07-28 13:28   좋아요 0 | URL
저랑 비슷한 세대신 거 같네요.
최인훈, 리영희, 한완상, 이문열, 이청준...카, 님 웨일지...
유시민을 통해서 젊은 시절의 쓰라리던 독서가 떠올랐지요. 낡은 책을 여러 번 복사한 것들을 가지고 공부하고 소각시키던 두려운 기억을 추억이라하기엔 너무 어두운 시대였어요. ㅠㅜ

windbird 2010-07-2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는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연대감이 있어 나름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연대감이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시절이죠.
하지만 요즘은 이질감만이 살아 있는, 자기만의 성 안에 갇혀 버린 익명의 개인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형도의 시편들이 그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특히 안개 같은 시에서...
벌써 사후 21년이 되었는데 항상 가까이 있는듯한 시인이에요. 요절해서 그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