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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벼운 짐 ㅣ 창비시선 117
유용주 지음 / 창비 / 1993년 10월
평점 :
일생동안 목수들이 져나른 목재는,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겨우 자기 키만한 나무를 짊어지는 것으로
그들의 노동은 싱겁게 끝나고 만다.
숨이 끊어진 뒤에도 관을 짊어지고 가는 목수들.
어깨가 약간 뒤틀어진 사람들(가장 가벼운 짐, 부분)
유용주, 그가 목수일 하던 때 쓴 시집이다.
목수인 그가 늘 낑낑거리며 나르던 무거운 목재들을 다 놓고,
먼 길 돌아가는 그 날,
약간 어깨가 뒤틀어진 몸을 겨우 자기 키만한 나무 위에 누이고,
다시 나무를 지고 가는 죽음을 생각한 시다.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관이 들어갈 그만큼의 넓이라 했던가.
인간에게 허여된 짐은... 싱겁게도, 가벼운 나뭇조각 하나다.
못을 박으며,
어깨가 뒤틀어지도록 목을 박는 그 한 순간의 망치질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가 눈을 뜨고 본 세상은,
안개가 사라진 대낮에도 그 도시에선
하루종일 하수도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개안, 부분)
못은 연결을 위한 직행 노선이다.
아무리 뛰어난 대목이라 할지라도
물에는 못을 박을 수 없다.
물은 연결 그 자체이기에
비에도 못박을 수 없다
구름 별 바람에게도 못박을 수 없다
못은 그대 눈길과
내 시선이 닿을 수 잇는 유효거리에서 출발한다.
못은 그대 향한
집중파탄이다
단절과 단절 화해시키는 불가슴이다
격정의 피, 단독 투신이다
못은 연결 위한 직통노선이다
그대 시선 너무나 까마득해
불가슴으로 다가갈 수 없을 때에도
목수들 망치 놓지 않는다
못주머니 풀지 않는다
못은 상처를 위한 가장 뚜렷한 파탄,
좋은 목수들 끈질기게 못질 계속한다.
그리하여 못은 파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가려 하는 것에만 전력 투신한다.
모든 사랑은,
빛나는 상처의 못박힘들이다(못, 전문)
목수의 눈으로 본,
가장 목수답게 만드는 소재는 '못'이리라.
못으로 세상과 만나고,
못과 망치로 세상을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
사람은 제 그릇에 맞게 인생을 보고 느낀다.
주꾸미 낚이는 서산 항포에서 그는 지금도 주꾸미 통신을 날리고 있겠지.
이제 그물망에 그득한 주꾸미 대신,
죽어버린 바다의 음울한 울음소리만 처얼썩대는 파도 소리에 묻혀 비린 석유냄새로 진동을 하게 된 그 땅에서,
그는 다시 생명과 연결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