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전집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동화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마해송 선생의 글이다.
마해송 선생의 아들로 유명한 마종기의 시가 전집으로 묶였다.
도쿄에서 태어나 연대의대, 서울대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재직중이다.
지금도 추잡하기 짝이없는 이 한반도의 남쪽이 1960년대엔 얼마나 가증스러웠으랴...
그 당시 잡히는 것 하나 없는 살림에 해외로 빠져나가버린 사람들의 삶이 간혹 부럽기도 하다.
요즘처럼 추악한 인간들의 득세가 치를 떨게 하는 시기엔 더욱.
그러나... 얼마전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막연하게 바라는 행복은 그것을 제외한 요소들을 곰곰 따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듯, 이 더러운 땅을 벗어난 이들의 삶 또한 비루한 나날의 연속이었으며, 오히려 고향땅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향수병에 시달렸을 수밖에 없는 노릇임을 이 시집은 생각나게 해 준다. 

물론, 서경석처럼 디아스포라로서의 처절한 비극의 사북자리에 선 인물은 아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조국의 총성과 최루탄 가스의 비린 냄새는 늘 그의 마음을 들쑤셔 놓았으리라. 

샤워를 끝내고 플로리다산 오렌지주스에 스크램블드 에그, 초록빛의 신년도 쉐보레로 출근하고 ,환자를 보고, 정맥주사를 주고, 세미나에 나가 주절대고, 시집 안 간 간호사가 눈짓으로 조르면 피임약 처방이나 써주고, 저녁에는 잭 베니의 암듬을 듣고 골프 중계를 보고, 그러나 아무리 주접을 떨어야 엽전은 엽전이다. ... 사우스 코리언은 사우스 코리언이다... 내가 흥분파가 아닌 것은 너도 알지, 그래서 아예 의과를 택한 것도 너는 알지. 그러나... 서울발 간첩 침투 소식은 나를 흥분시킨다. 흥분하다가 지지리도 못난 이씨 조선을 원망한다. 원망하다가 세계 지도를 물그러미 새겨보고 체념한다. 체념하다가 내가 갑자기 강대한 청년이 되는 틀림없는 생시에 꿈을 꾼다.
딴 나라에 삼사 년 살다 보니까/ 조용한 게 무척 좋다. /새벽 두시 반 술집을 나서면/ 친구도 나라도 아무 것도 없다./ 초저녁에 잠든 아기와 아내를/ 새벽녘에 돌아와 보면/ 문득 가여워진다. / 허나 살아있는 자의 가여움은/ 백 번을 당해도 허영인 것을. 요즈음은 모든 게 멀리 보인다.(편지 2 - 동규에게, 부분)  

돌아가신 내 선친의 마지막 하서 - 조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만도 애국하는 태도라 생각한다고 하신, 또박이 박아쓰신 그 아버지는 외고집인가, 지금도 윤기있는 머리털같이 가난한 아버지.(편지 3, 부분) 

나는 외국에서 나고 자라고/ 고국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다시 외국에 나와 있다./ 내 사춘기의 여름에 남은 기억은/ 총과 창으로 죽은 시체들/ 천, 십만, 백만의 시체가/ 죽어서 썩어서 우물 속에서 끓고/ 장작같이 쌓여서 태워서 탄화하고/ 그래서 내 사춘기는 탄화하고...(그리고 평화한 시대가, 부분) 

이렇게 그는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면서 형극처럼 고향을 떠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고국에서 내 친구가 혼자 소주 한잔 들고 우는 요즈음의 울음이, 오늘밤 내 창문 박에 도달해서 눈바람 소리로 들린다. 조용할 수 없는 이 밤을 깨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리고 아무도 잘못이 없다는 이 커다란 확신의 목소리.(1975년 2월) 

유신 시대의 어두운 울음을 멀리서 슬퍼하던 그런 시다. 

그는 음악을, 무용을 늘 옆에 끼고 살면서도 그 음악 속에서 무용수의 몸짓에서 '조국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불빛처럼 뻗던 자유'를 읽어낸다. 여지없는 디아스포라의 슬픈 인생이다. 

유난히 이쁜 계집애 많던 명륜동 뒷골목을/ 아침이나 저녁이나 비슷하게 끓던 골목, / 팍팍한 그 된장찌개도 먹고 싶다./ 이제 알 듯도 하다. / 돌아가신 선친이 다 던지고 귀국하신 뒤/ 아쉬움 속에서도 즐기시던 당신의 가난을/ 가난 속에서 즐기시던 몇 개의 허영을(몇 개의 허영, 부분) 
아무 데서나 사는 건 아닌 것 같애.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 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아빠는 그래도 어두웠잖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바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 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부분)
 

아, 마해송 선생의 가난한 그렇지만 즐기시던 허영을 생각할 만 하다. 

낚시질하다 /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낚시질, 부분) 

자랑스럽게 처음 보는 고국에 감격해 하더니/ 석달만에 너는 풀죽은 배추가 되어 돌아왔지. / 얼굴의 상처보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컸겠지 데모의 뜻도 모르고 최루탄 연기만 피해다니다가. 데모에 참석하지 않는 놈은 사내도 아니라고. / 자기 나라 말도 제대로 모르는 놈은 바보놈이라고...(외로운 아들, 부분)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까지 조국은 매워서 눈물나는 곳이었던가. 시집살이같은 조국, 한국.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 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 마디/ 얼마나 또 오래 서로 딴생각을 하며/ 박꽃을 보고 꽃의 나머지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제 들어가 자려무나/ 네 아버지/ 문득 돌아본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박꽃, 부분) 

마종기의 시는 결국, 그 혼자만의 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종기의 시는 마해송이란 아버지와 그 자신, 그리고 그의 가족과 더 넓게 보면 이민 생활에 팍팍한 삶들의 표상이고,
모든 떠돌이 디아스포라의 향수와 슬픔을 대변하는
그리하여 모국어로 쓴 타국의 이야기요,
조국을 그리워하는 이민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5-2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치수 선생의 글에선가요, 마종기 시인이 남산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뒤에 미국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접하고 짠했었는데... '디아스포라'라는 표현이 적확하네요...

글샘 2010-05-27 14:48   좋아요 0 | URL
요즘도 이 나라를 확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닌데, 70년대엔 어쨌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