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고마워 동심원 8
민현숙 지음, 조경주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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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이발사예요
할아버지댁
깜장 염소는 

오늘은 콩밭 두렁
삐적삐죽 자란 풀
이발하러 가고 

내일은 들깨밭 두렁
엉금엉금 기어나온 풀
이발하러 간다지요 

가끔 풀 뜯다가
콩잎도 조금 먹고
깻잎도 조금 먹고 

하지만 괜찮아요
실수로 먹은 콩잎 깻잎
수고비 대신이랍니다(할아버지댁 염소)  

민현숙의 동시들은 억지로 말을 꾸미지 않는데도,
그 속에서 삶이 우러나온다.
바라보는 눈살이 다사롭고 말뽄새가 정겹다.

수양버들을 보면 안다
나무를 흔드는 건
바람이 아니라는 걸 

말 궁둥이에
채찍 때리며
말을 몰아가듯 

수양버들 긴 채찍이
바람의 궁둥이를 치며
바람을 몰고 있다는 걸 

채찍질에 놀란 저 바람
앞발을 쳐들고
뒷발길질을 해 대고
겅중겅중 몸부림이다.(바람 많은 날)
  

바람부는 걸 보고도,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걸 보고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느낄 줄 아는 눈. 날카롭고 매서운 시인의 눈이다.

- 으악 무서워!
난 안 떨어질 거야
겁 많은 은행 알
얼굴 샛노래졌다. 

두 눈 꼭 감고 뛰어내0리라고
그까짓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지의 작은 은행 알
흔들어 대는 바람 

- 싫어, 싫어. 안 떨어진대도!
겁쟁이 은행 알
끝내 고집부리더니
쪼글쪼글 거죽이 말라붙었다. 

긴 겨울 지나
꽃피고 열매 맺는
새봄 다 지나가도록
가지에 매달려 데걱데걱 

푸른 새싹 밀어 올리기에도
맛난 음식 되기에도
이미 글러버렸다
엄마 손 놓지 못한 저 은행 알(엄마 손 놓지 못하더니)
  

아이들더러,
좀 어른스러워 지라고,
엄마들더러,
애들을 좀 작작 다그치라고 훈계하지 않고,
멀거니 바라보이는 은행 알 하나 그려내면서, 할 말을 다 한다.

오늘은 졸업식날
우리 반 반장 엄마가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혼자 몸으로 농사짓고
경운기도 척척 잘 모는
경찬이네 엄마
식당일 하느라
젖은 손 마를 날 없는
은정이네 엄마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우리 엄마 

세상에 장하지 않은
엄마가 어디있다고 

공부 잘 하는 반장 엄마가
졸업생 어머니를 대표해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장한 어머니상)
  

뒤틀린 세상을
비틀어 보지 않고,
그저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그렸을 뿐인데,
세상에 장하지 않은 엄마가 없음을 가르치면서도 시인의 목소리는 나직나직하다.

엄마, 아무래도
내 몸의 건전지가
다 닳았나봐요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터덜터덜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지 뭐예요 

이러다가 꼭
땅속으로 쑤욱
몸이 가라앉을 것 같아요 

그러니 엄마
어서 내 몸에
건전지 좀 넣어 주세요.(엄마, 밥주세요)
  

힘겨운 아이들의 삶을
따스한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목소리
아이들이 그런 목소리라야 읽고싶지 않을까.

늦잠 좀 잤다고 
고양이 세수 좀 했다고
김밥 좀 집어 먹었다고 

엄마, 오늘만큼은
화내지 마세요
신나는 소풍날이잖아요 

지각 좀 했다고
구령 좀 못 맞췄다고
줄 좀 틀렸다고 

선생님, 오늘만큼은
야단치지 마세요
즐거운 소풍날이잖아요.(오늘만큼은) 

아이들에게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면
이렇게 아이들 맘을 꼭 알아줘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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