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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ㅣ 문학.판 시 2
이성복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시집'이라 이름붙이는 일은 좀 쫌스럽다.
아니, 시답잖고 좀 우습다.
시집이라는 말에는,
적어도 조금은 엄숙한 냄새가 배어 있어야 한다.
시집에서는 가끔씩 매캐한 종이 내음새도 새어나와야 하고,
빈 자리들에게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도 독자를 맘편하게 해줘야 한다.
이 책은 차례에서부터 독자를 갑갑하게 만든다.
그리고, 각 편들의 글을 보면...
제목은 조금 시적이지만,
그 아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 폴 엘뤼아르, 카프카, 브레히트 등 유명한 이들의 글이
두서너 줄 적혀 있다.
그 밑에는 열줄 내외의 단상들이 마구잡이로 적혀있는데,
그 글들의 내용은 제목에서 연상된 것도 있고, 시의 구절과 연관된 것도 있지만, 작가의 잡담이기가 쉽다.
유난히 달밝은 밤이면 내딸은 나보고 달보기라 한다.
내 이름이 성복이니가. 별 성 자 별보기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애 보고 메뚜기라 한다. 기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을 걸치면, 영락없이 아파트 12층에 날아든 눈 큰 메뚜기다.
그러면 호호부인은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다.
벼랑의 붉은 꽃 꺾어 달라던 수로부인보다 내 아내 못할 것 없지만
내게는 고삐 놓아줄 암소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
오를 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
절해 고도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처럼.(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마지막 부분에 조금 시적인 부분도 있지만, 좀 아니다. 싶다.
이건 블로그에나 올릴 법한 글이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블로그질이라고 '-질'이란 얕잡아보는 접미사를 붙이지 않던가.
시쓰는 일을 시질이라고 하진 않잖나 말이다.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 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18 그렇게 소중했던가)
이외수처럼 그도 좀 이런 책을 쓰고 싶은가.
기념비를 세우지 마라. 장미꽃으로 하여
그저 해마다 그를 위해 피게 하라.(라이너 마리아 릴케, 기념비를 세우지 마라)
이런 시가 좋으면, 그런 시를 쓸 일이지. 왜 리뷰처럼 끄적인 글을 책으로 낸 건지 모르겠다. 당최.
좀 안습이기도 하다.
이성부의 시 중 하나를 적으면서 아쉬운 마음을 대신한다.
그 날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