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니 - 흙 향기 묻어 있는 알토란 같은 어린 시절 이야기
강병철 지음, studio 돌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강병철의 글은 아련한 옛날 이야기다.
가난이 온 세상에 햇살처럼 퍼져있던 시절.
무너져가는 농촌에서의 유년 체험을 짠하고 조금은 서럽게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다. 

일종의 풍물기이기도 하고,
이제는 잊혀져가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사람들이 대한 기록 문학이다.
지금은 풍족해지기니 했으나, 그 가난하던 시절보다 불행한지도 모를 사람들이라면 그의 글을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풀빵 장사를 하던 연화 어머니가 남기신 말,
많이 알먼 여자 팔자만 험해진다. 착허게나 살아라...
허긴 착허게 살먼 또 뭐 한뎌. 착허게 사능 거허고 잘 사능 거허군 아무 상관두 없어...

아, 이런 것이 민중의 지혜란 것일까. 

그런 연화와 어머니의 풍경조차 어둠에 덮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득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려 보았다.
희망은 기다리는 사람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126)  

아, 연화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 도시로 식모살이 떠나는 연화가 기어코 자식을 1등짜리로 만들려고 기를 쓰고 만든 곳이 '대치동'이고 '특목고'가 아닌지 모르겠다.
"느이 집은 부잣집이라 좋겠다... 돈, 돈"
그 자식들은 유시민처럼 철창을 들락거리기도 했고, 노동자의 편에 서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자식이 공부 잘 해서 특목고 가고 했으면 좋겠고, 절대로 남들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아니기를 바라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게 철학처럼 되어버린 역사... 

연화 어머니와 이웃동네 학교 운동회에 아이스케키를 팔러 갔을 때 소년은 소리도 질러 주고 제법 연화와 가까워질 기회가 되었는데,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비가 내려 아이스케키는 다 녹게 되고...
그걸 "싸게싸게 먹어, 죄다 녹넌다."
빗물로 퉁퉁 불은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사는 게 그랬다.
큰 산을 간신히 넘으면 또 막혀 있는 더 큰 산.(159) 

나는 태어나길 충청북도 산골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다섯 살 무렵 부산으로 옮겨왔는데, 가족들이 쓰는 충청도 사투리가 참으로 촌스럽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부산 사투리 역시 억세빠져 배우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결국 부산도 떠서 서울로 대학을 갔던 것은,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대한 동경에서 이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학갈 때 면접보던 구인환 선생이 "부산에도 국어교육과가 있는데 왜 서울로 왔느냐?"는 질문에 답이 막혔던 기억도 나는데,
그렇게 살아본 서울 또한 촌스럽기 그지없는 곳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런 책 속에 담긴 충청도 사투리가 그렇게 다사롭기 그지없다.
지금은 오히려, 충청도 부모님과 친지들 덕분에 익숙한 충청도 사투리와,
가장 신체에 익숙해진 부산과 경상도 사투리(이제 대충 들어도 서부경남 사투린지 대구영천경주 사투린지 안동 사투린지도 알 정도다.),
그리고 친구들 덕분에 얻은 전라도 사투리와 처가 덕에 주워 들은 강원도 사투리(충북 제천은 원주와 같은 구역이라 강원도 사투리를 쓴다.) 덕에 
표준어는 하나의 공용어일 따름이고, 사투리가 주는 구수한 맛을 더 넉넉하게 즐길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이 책에 쓰인 살아있는 충청도 말도, 아마 30년 후면 이런 기록 문학 속에나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이면, "스애임예, 알았으예..." 이런 말투를 쓰던 아이들을 숱하게 만났는데, 요즘 부산 애들은 부산 사투리를 모른다.
이런 살아있는 충청도 말투들이 넉넉하게 남겨지는 작품들이 많이 쓰이고 읽히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순수헌 사람은 뭐던지 쥑이능 것을 싫어해.
옥이 이모를 생각하며 적은 글이다.
금방 죽을 것 같으면 왜 일을 혀? 나 같으먼 고대 죽는다먼 아무것두 허지 않겄다. 방에서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볼 거여.
누워서 죽는 날만 기다리먼 더 무서워...
이몬 희망이 뭐여?
나?
이.
나는 이 초록빛 바다...
바다가 되고 싶다구?  말이 되는겨? 

반년 뒤에 옥이 이모는 죽었다... 바다에 뿌렸다... 이모는 정말 초록빛 바다가 되었다. (99)

그 당시는 삶과 죽음이 가까웠다. 지금은 죽음은 장례식장, 영안실, 화장장, 이렇게 자본과 결탁된 곳에만 있다.
보람 상조는 민중의 벗이 아니라 착취자였음이 드러난 것처럼... 죽음은 징헌 것이 되어버렸다.
아니, 인간의 삶 어느 것 하나 징허지 아니한 것이 없게 되어 버렸다.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옛날 이야기 읽으면, 괜히 코끝이 찡하고,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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