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나이에 지다(홍세화)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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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법조계 등에 대한 불법 로비, 비자금 조성 및 탈세, 경영권 불법 승계 ... 이것이 삼성이란 괴물 재벌의 생존 전략이라고 김용철이 폭로한 책이다. 

김용철은 결국 졌다. 그렇지만, 김용철이라는 용기있는 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많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도 졌다. 사제단이 촛불집회를 말아먹었다는 헛소리를 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은 세상을 모르는 이들이다. 촛불은 어차피 꺼질 때가 돼서 꺼진 것이다.   

그러나 김용철의 이같은 가슴 터지는 경험에 대한 고백과 사제단의 노력으로 삼성에 대한 일단이 세상에 밝혀졌다.
물론, 그들의 더러운 삶의 방식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용철의 이 책을 읽기가 두려웠다.
살아있는 권력에게 벌벌 떠는 검찰, 영원히 살아있을 권력의 개가 된 검찰을 지금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과 행정과 사법이 모두 군사독재 시절보다 철저하게 '돈'의 시녀가 되어버린 세상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 사는 원리가 그렇게 추잡한 것 아니냐는 듯,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내는 곳도, 노무현을 쥐락펴락 하던 곳도 삼성의 돈다발 안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책을 읽기가 두려웠던 모양이다. 

이 책을 읽고난 지금도, 역시 사는 일은 두렵다.
전두환의 비자금을 까발리던 검사가 삼성으로 들어가게 된 내력과, 삼성을 정면으로 들이받게 된 사연을...
그리고 그의 발언을 믿을 수 없다고, 조사하지도 않는 불성실한 검찰...
권력을 물어뜯을 수 없다는 썩어빠진 검찰을 길들인, 삼성 장학금의 실체는 세상을 온통 미쳐버린 붉은 색으로 물들인 것 같다.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을 읽을 때,
아, 미국의 돈줄은 이렇게 추악한 모습으로 세계를 향해 있구나... 하고 느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국의 <제1권력>이 이런 모습으로 부패해 있구나... 하고 온 몸으로 전율했다. 

누군가는 오늘도 '삼성 공화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건희 회장님께 감사기도를 올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오늘도 '삼성 장학금'을 받아 룸살롱을 전전하며 희희낙낙할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누군가는 오늘도 컴컴한 복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피를 토하다 죽어갈는지도 모른다.

<홍세화 칼럼> 스물 셋 나이에 지다...
http://www.hani.co.kr/arti/SERIES/114/414621.html 

'삼성' 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렸다.
좀 더러워도 빨리 성장하는 것이 좋은 일이 되어버렸다.
없는 것들은 좀 무시해도 좋은 것이 되어버렸다. 가진자들이 앞서가는 데 없는 자들이 길을 막아서는 안되는 거였다. 

광주를 쓸어버리고 권력을 잡았던 신군부처럼,
삼성만이 유일의 가치인 삼성 공화국에서는 오로지 삼성을 인정하는 자만이 '공화'국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
모두 화합하여 살아가는 삼성 공화국에서 김용철이나 사제단 류의 떨거지들은 지탄의 대상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박연차나 천신일보다 수천만배 큰 규모의 삼성 장학금을 조사하지 못한 채, 노무현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정말 노무현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고 나니 하게 된다.
권력이란 것의 허상을 깨달았을 때, 칼날 위의 꿀을 빨던 혓바닷에 보게 된 피맛이랄까... 

존엄하게 태어난 인간,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얻으려고 애쓰지만,
삼성왕국에서는 그 물적 조건을 얻으려면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내던질 것을 요구한다.(위, 홍세화 칼럼에서...) 

아, 무서운 노릇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내던지고 얻을 수 있는 물적 조건이란... 지위와 권력이란... 

이 땅덩어리가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 휘말림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책. 

John Greenleaf Whittier라는 시인이 남겼다는 말이 있다.
"말로든 글을 통해서든,
모든 슬픈 말 중에서도 가장 슬픈 말은
'그럴 수도 있었는데'
라는 말이다." 

김용철과 사제단의 발표는 <삼성을 더 건강한 기업으로 고칠 수> 있었는데...
<삼성을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사건이었다. 

슬픈 말 중에서도 가장 슬픈 말...
그럴 수도 있었는데...   

아래같이 본질을 보지 못하고 깃털을 미워하는 사람들로서는 또다시 그 슬픈 말을 반복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떡을 언제 돌려야 할는지,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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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래도 삼성에 자녀를 취업시키고 웃음이 나십니까?
    from 글샘의 샘터 2010-05-12 15:39 
    지난 2~3년간 '반도체 백혈병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또 급성골수성 백혈병 환자가 나왔다. 삼성전자와 시민단체 '반올림'은 "기흥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20대 여직원이 지난 9일부터 서울의 한 병원에서 백혈병 판정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12일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2003년 입사한 이 여직원은 2007년까지 연구실에서 잠깐동안 불량 처리된 반도체 제품 테스트 업무를 맡아왔고 2007년 이후 사무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