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 주머니 속의 샘터 명작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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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님... 잘 계신지요. 

저는 요즘 친일파가 되고 싶은 심정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일제 강점기의 피해상을 읽으면서, 또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일본을 증오했겠습니까마는, 요즘, 일본 사람들의 제 나라 사랑에 감동을 받을 정도입니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제 나라의 국익을 위해서 근거도 없는 말이나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차라리 존경스럽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왜 이리도 제 나라를 위해서 한 마디 하는 정치가가 없고,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그저 제 한 몸의 안위를 위하여 쉬쉬하며 감추려고 몸둘 바를 모르는 꼬락서니인 모양인지요. 
부끄럽고 슬프기만 할 따름입니다. 

십오 년도 전에 제가 지인에게 선물한 기억만 나고 읽어보지 못했던 책을 스님 잠드신 소식을 듣고 나서야 찾아 읽고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침묵의 말씀인지도 모릅니다.
스님의 절판 선언이 오히려 큰 말씀이었는지도... 

존재의 바탕인 침묵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190)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날마다 기도를 드리고 있지만 영혼의 침묵 속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듣기 좋은 말로 할 뿐이다. 그러나 진실한 기도는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원초적인 침묵으로 이루어진다. 말씀이 있기 전에 침묵이 있었다.
 

스님의 이 이야기들은 십오 년 쯤 전에 씌어진 것입니다.
그 때의 대통령도 지금 이 당에서 나온 사람이었고,
지금과 흡사하게 별 지긋지긋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잡아먹었고, 한명숙 전 총리도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고 난리를 치지만, 오늘 1심 선고는 무죄로 판명이 났던가 봅니다. 미친 검찰은 줏대도 없이 명령에 따라 다시 항소를 하겠다고 날뛰고 있구요.
숭례문 불탄 이후로, 온갖 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용산에서 사람이 타 죽더니, 이번엔 멀쩡한 바다에서 해군 함정이 사라지는 사고까지 나고 말았습니다. 국가는 온통 신뢰를 잃을 짓만 하고 있습니다.  

절이나 교회에 종교가 있다고 잘못 알지 말아라.
어떤 종교든지 일단 조직화되고 제도화되면 종교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그때 종교는 더이상 신이나 진리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독선과 아집에 대한 변명이 되어버린다.(84)
 

그래서 스님은 불일암조차 떨쳐버리고 오두막 생활을 하시다 폐를 상하시어 돌아가신 것인지요.
온통 새로울 것도 없는 <뉴스>가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 이야기로 수두룩한 세상따위 그대로 벗어던지고 말입니다. 

나를 위해서 하려고 하는 온갖 종교적인 태도는 마치 돌을 안고 물 위에 뜨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나라고 하는 무거운 돌을 내던져라. 그러면 진리의 드넓은 바다에 떠올라 진실한 자기를 살리게 될 것이다.(210)
 

그렇습니다. 인간만큼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종자가 또 있을는지요. 그래서 환경 문제의 최악의 범죄자가 인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해가 지고 난 다음 하늘이 벌겋게 물드는 현상을 노을이라고 하는데, 한 인생이 살다가 간 자취도 노을처럼 남을 거라고 여겨진다. 후회없이 잘 살아야 그의 자취인 노을도 아름답게 비쳐질 것이다.(98) 

아, 어찌 이렇게 삶을 부끄럽게 하는지요. 제 스스로 지은 업입니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듯이 수행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어 처마끝에 매달아 놓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혹은 바다에서 그물로 고기를 건져 내듯이 고통바다에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법의 그물로 구제하라는 뜻에서라고도 한다. 바람이 없으면 그 존재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풍경,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풍경은 우리들에게 명상의 소재를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무딘 귀는 단지 땡그랑거리는 풍경 소리로밖에 들을 줄을 모른다. (105) 

 

지금 대통령 말고, 전에 장로님 대통령이 계시던 시절,
연못에서 연꽃을 볼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147)
이렇게 쓰셨다.
인간은 참 치사한 동물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고궁의 연꽃마저 씨를 말리다니...  

사티쉬 쿠마르의 이야기를 인용하시는 중에,
우리의 학교들, 우리의 대학들, 정부들, 교육부들은 밤낮으로 아이들의 머리속에 케케묵은 필요하지도 않은 오히려 해를 끼치는 위험한 생각들을 쏟아넣느라고 바쁘게 돌아가면서 한 조각의 사랑도 심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아이들을 텅빈 물통으로 여기고 온갖 쓰레기와 먼지를 그 속에 쏟아 넣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163)
하는 구절을 남기셨습니다. 아,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매일 대하는 저로선...

조고각하(照顧脚下)란 말이 있다. 자신의 발 밑을 살피라는 것.
신발을 제자리에 바르게 벗어놓으라는 뜻이지만, 나아가 자신의 현존재를 살펴보라는 법문.(198) 

아, 스님, 매일 제 자신을 돌아보겠습니다. 커피 내린다고 물 부으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조그만 종소리 울릴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 살아라, 하고 스스로 타이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스님께서 귀하게 여기신 매화의 조건대로,
무성하고 살찐 것보다는 그 가지와 꽃이 드물고 여윈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미숙한 것보다는 노숙한 것을, 피어나기 전 그 부풀어오르는 꽃망울의 충만감을 높이 사겠습니다.(322)
날마다 꽃망울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저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칭찬도 할 수 있는 일이니, 고마운 일입니다. 

원각경에서 <헛것인 줄 알았으면 곧 떠나라. 떠나면 본래의 밝은 그 자리>라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343)
매일, 자신의 가치를 깨달을 줄 아는 마음챙김의 자세를 놓치지 않고 살려고 힘쓰겠습니다. 

하루에 열 번, 스무 번이라도 종을 울리겠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의 종을... 

스님 편히 쉬십시오.
오늘 지율 스님께서 올리신 사진을 보니, 땅을 파헤쳐서 죽음의 길로 만드는 이들의 추악한 노릇이 통탄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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