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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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순이 삼촌이라는 소설로, 제주의 4.3을 듣고 보지도 못하던 사람들에게 '낙인'과도 같은 기억을 남겨준 작가다. 

현기영의 소설 속에서는 시대를 뛰어 넘는 서사 구조가 독자의 심장 벌떡거림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것 같다. 

그런 기억에 비하자면, 누란,은 썰렁한 소설이다. 후일담 소설이기도 하고, 그저 그렇고 그런 걱정꾼들의 걱정이 가득하다. 

80년대는 진정 그토록 건강한 시대였던가?
온 몸을 내던져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광주>라는 모래먼지 속에서 <사탄>을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광주라는 사건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의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제 광주를 30년 지나쳐버린 자리에서 오늘의 좌표를 매기는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작가를 여기까지 몰아온 것인데,
서사가 가득하여야할 자리에, 온갖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상념들만 가득하다.
마치 디시인사이드의 1회용 잡글들 처럼... 

  

무기력하고 당황스럽기만 한 에곤 쉴레의 자화상들처럼, 과거를 아무리 곱씹어도 지금의 결과가 도대체 어디서 잉태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한 남자는 당황스럽기만 한데, 그래서 곰곰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잡도리하듯 되훑어 보는 일인데,
서사가 상실된 망상들 사이로는 어떤 인물 하나 '형상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마냥 '허무'하기만 한 존재들이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존재들로 남았고,
결국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마는,
지구가 멸종시키고 싶어하는 절멸의 시도에 가장 먼저 호응하는 민족으로 손을 번쩍 든 것인지도... 

병원도 교회도 공포를 퍼뜨리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모든 이론은 잿빛이고 중요한 건 현실의 푸른 나무라던 괴테의 시구처럼 오로지 밥벌이에만 반응하는 미생물같은 촉각만 유지한 채, 말초적 흥분만 살아님은 인간들이 미래의 밥벌이만 떠벌이고 다니는 시대. 

별을 바라보던 시대는 아름다웠노라던 루카치의 언사처럼, 지나간 시대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를 노릇이고... 

고비와 타클라마칸, 두 사막 사이에 한때 크게 번창했던 옛 왕국,
누란을 삼켜버린 그 가없는 모래바다,
황사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별도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며,
저기가는 기러기는 길이 있어 좋겠노라던 김소월도 떠오르고,
왠지 김수영이 술에 취해 꽥! 소리라도 지를 것 같은 느낌의 소설인데...
김광규가 술에 취해 이화동 182번지를 뒤적거리고 걸으며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설핏 볼 법도 한 그런 소설. 

시시한 소설, 그러나, 뜨거웠던 과거에 대한 소설...  

blanca님의 '실비아 플라스' 관련 리뷰를 읽다가, 주인공을 노숙자로 결말짓지 말고 실비아 플라스처럼 결론지었더라면 차라리 현실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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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 광 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는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여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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