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할! 이런 소리가 있다.
멍청한 놈아, 이렇게 설명해 줘도 모르냐?
이러면서 꽥, 소리를 지르시는 선지식의 성난 일갈이 할! 이다.
헐~ 이런 소리가 있다.
멍청한 놈이, 이렇게 설명해 줘도 모를 때,
달을 쳐다보라고 손가락질을 하면, 손가락만 쳐다볼 때, 불쌍한 인생더러 어이없다는 뜻으로 날리는 말이다. 헐~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시면서 말빚을 거두어 들이겠다고 책들을 절판시키겠다는 이야기를 남기셨단다.
그 정신은 '무소유'를 설파하신 스님께서 그간 남겨두신 '말의 소유'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반성에서 나오셨던 것일게다.
그렇다고 스님의 책을 모조리 모아서 분서라도 하라는 뜻일 리는 없다.
그런 가르침을 통하여 무언가를 생각하고, 좀 배우라고
할!을 한 소리 하시고 가신 걸 게다.
그랬더니 무소유 한 권이 몇 만원을 호가한다는 황당무계한 시츄에이션이 벌어지고 있다 하니... 그야말로 헐~이다.
헐~ 유발자는 <방!>을 내려야 할 노릇 아닌가.
하긴, 헐~ 유발자들에게 방!!!을 석 대 내린다 한 들, 손가락만 바라보며 아프다고 할 노릇이지만... 

두 번째 법문집을 조금씩 조금씩 읽었다.
간혹은 서늘한 가을 바람을 쐬는 듯 시원한 이야기와,
가끔은 따사라운 겨울 양지녘 햇살처럼 온화한 이야기들이,
전혀 어렵지 않게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법정 스님의 글들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선 불교의 영향으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남발하는 이야기들이 흔한 세상에서,
무소유처럼 역설적인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늘 생활 속의 사례를 들어 가면서 쉽게 이야기하시는 그런 글들. 

스님의 법문을 두고두고 읽으라고 책으로 묶었지만, 이미 20년 전의 이야기들이라 간혹 9.11 테러 즈음 이야기도 나오고 한다. 스님의 무소유를 구하지 말고, 지금 팔리고 있는 이런 책들을 읽으면 그 정신을 들을 수 있는 노릇이다. 꼭 무소유란 책을 읽고 싶다면 도서관에 가면 숱하게 널렸을 책들이거늘... 

좋은 책은 베스트셀러가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스트셀러는 한때입니다.
말하자면 베스트셀러가 모두 좋은 책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합니다.
세월의 체에 걸러져서 남은 책들이 바로 양서입니다.
그런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합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사실 한 번 읽을 가치도 없습니다.
진정한 독서인은 양서와 비양서를 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양서와 비양서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 독서인입니다.
또 책을 읽을 때는 느긋하게 읽어야지 조급하게 건성으로 읽지 마십시오.
그렇게 읽으면 읽는 것이 아닙니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르게 됩니다. 음미하듯 읽어야 합니다.(
327) 

이렇게 책을 읽는 일이나 법문을 듣는 일이나, 마음 속에서 살질 영혼을 위하는 호흡을 살고있는 이 육신이 중요한 것이지, 많이 읽는 일이나 빨리 읽는 일이나 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도 독서 습관을 통해 얻은 것이 하나있다면, 타인들의 리뷰를 통해 좋은 책을 골라낼 수 있는 시야가 열렸다는 것 정도랄까.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말고, 듣지 않아도 될 것은 듣지 말고, 먹지 않아도 될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또 입지 않아도 될 시시한 것은 입지 마십시오.
하찮은 것들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업의 덫에 얽혀 들 확률이 적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넘치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고 억제해야 합니다.
나한테 꼭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걸러 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면 나 자신은 쓰레기통이 됩니다.(166) 
넘치는 물량은 결코 맑고 향기로울 수 없습니다.(155)

오늘 저녁, 1박2일이란 연예프로에서 충무김밥을 걸고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방송이 마친 직후부터 부산의 유명한 한 충무김밥집은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아내가 열 시가 다 되어 거길 갔는데, 완전히 혼이 빠져버릴 정도로 사람들이 문전성시였다고...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이 넘친다. 인생의 호흡이 좀 길게 들이쉬고 내쉬어지지 못하고, 지나치게 짧은 호흡에 의존한다.
자제심과 억제심은 없고 쓰레기통에 가까운 수집벽에 나는 물들어 간다.
맛난 먹을 것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과, 거기 현혹되어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들과...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다.
이 하루라는 것이 우리 생애 가운데 얼마나 귀중한 날인지...
그 하루를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하루를 뛰어넘지 못하고,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써 보내야 합니다.
... 세상은 너무 험난하기 때문에, 깨어있지 않으면 제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깨어있기 위해서 기도하고 참선하고, 나눔도 실천하는 것입니다.(129) 

지나치게 소비하고 위태로움 속에서 면돗날 위의 꿀을 핥듯 험난한 순간들을 사는 현대인들로서,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니는 행동 말고, 진실로 기도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매 순간 깨닫지 못하더라도, 아침과 저녁을 열고 닫을 때, 기도와 함께하는 것은 필요한 노릇일 터. 

탐험가들이 원주민을 짐꾼으로 몰고 가는데, 그들이 요지부동이었다. 잘 가다가 주저앉은 그들에게 이유를 물은 즉,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온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랬다.(38)
 

나,는 잘났다 생각하고, 오래 살 거라 생각하고, 너는 어리석다 생각하는, 중생으로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지혜가 있다면, 우리의 영혼이 템포를 놓치는 일을 예방할 수도 있을 일이다. 

스님의 글을 읽고 스님을 만난 어떤 이가 "와서 보니 대단치도 않네. 바싹 마른 중이네!" 했다 한다.
바짝 마른 겉모습은 보고, 스님의 글에 담긴 정신은 잊은 것이다.
나도 사는 일이 그렇다. 매일 겉만 보고, 사람이 곧 부처임을 늘 잊고 산다.
자신이 무상하기 그지없으면서도 부처인 존재인 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을 '중생상'에 얽매 놓고 비평한다.
말 험악하게 하는 걸로는 선생을 따를 자 있을까? 

나쁜 친구란 음울하고 불쾌한 사람, 육신은 살아있지만 정신은 죽어있는 사람.
생각과 대화가 보잘 것없는 사람, 끝도 없이 지껄이는 사람,
남의 의견에 휩쓸리는 사람...입니다.
나쁜 친구를 가려내기 전에 나 자신이 과연 남에게 좋은 친구 역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227)
  

좋은 선생 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아는 만큼 실천하기가 어렵다. 

실천하며 살지 않는다면 안다는 것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많이 안다는 일은 많이 분별한다는 것. 적게 알면서도 많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겸허한 마음은 아는 소리 전혀 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아는 것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물론 필요한 것은 알되, 그것에 우리의 혼이, 의식이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216)
 

스님의 말씀에 언급된 것처럼, 재물이 없어도 선생 노릇하면서 베풀 수 있는 노릇이 얼마나 많은지, 많이 돌아보는 독서였다. 

재물이 없더라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무재칠시.
따뜻하고 온화한 눈으로 베풀고, 부드럽고 즐거운 얼굴로 상대방을 대하고, 좋은 말과 부드러운 말씨로 사람을 대하며,
언제나 몸을 움직여 일어나 맞이하며 정성껏 대하고, 타인이나 다른 존재에 대하여 자비심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양보하여 베풀고, 다른 사람에게 쉴 공간을 내 주는, 안시, 화안시, 언사시, 신시, 심시, 상좌시, 방사시. (263)
 

스님의 글을 읽는 일은 정보를 얻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부처님의 말씀은 하나도 낯선 것이 없다.
모두 내가 알고있는 것이고, 내가 읽었던 것이다. 모두 옛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고, 부처님도 이렇게 들었던 것이다.(如是我聞) 

순수한 천국이란 정보가 전혀 없는 곳이다.(203)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불행하다.
 

인터넷을 켜면 실시간으로 뉴스가 전해진다. 예전엔 서울서 뉴스가 부산으로 내려오는 만큼 시간이 필요했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달되는 만큼 시간이 걸리고 했다. 뉴스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흉칙하고 무서운 것들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정보로 제공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는 불행한 곳이다.
현대인들이 바캉스를 떠나고 싶어하는 곳들이 모두 한결같이 정보가 유통되지 않을 법한 산골짜기나 바닷가가 아닌가.
물론, 이 좁은 한국에서는 바닷가 가도 인터넷 빵빵 터지는 피시방이 가득하지만... 

전생 일이 궁금하다면 현재 내가 받는 것을 보라. 그리고 내가 현재 짓는 것을 통해서 다음 생을 미루어 알 수 있다.(214) 

그저 읽기만 할 노릇이 아니다.
나의 현생이 그저 그렇다면, 다음 생을 위해 열심히 살 노릇이다.
나의 현생에 힘든 일이 쌓인다면, 다음 생엔 힘든 일 쌓이지 않도록 지금 발심할 일이고,
남들의 현생에 지복이 가득하다면, 질투할 노릇이 아니라 분발심을 가득 낼 일이다. 

스님의 소멸 후에 스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마음 한켠이 쓸쓸해지는 일이다.
그렇지만, 고통은 집착에서 오는 것,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사시고, 도를 공부하시면서 소멸의 진리를 아시는 스님이셨으니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제발 손가락 좀 그만 쳐다보고 달을 좀 보라고 큰 일갈! 주시고 가셨으리라 생각한다.
스님,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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