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광란의 도가니, 열광의 도가니, 감동의 도가니... 이렇게 쓰는 말, 도가니.  

그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점토(粘土) 혹은 다른 내화성(耐火性) 물질로 만들어진 용기.고대로부터 금속을 녹이거나 시험하는 용기
2.  소의 무릎뼈. 무릎에 붙은 살덩이가 도가니살이고 뼈도가니는 무릎뼈이다. 

보통 도가니탕은 도가니에 끓인다고 아는데, 도가니탕은 2번 용례이고, 이 책의 도가니는 1번 예로 쓰인 것이다.
용광로와 비슷한 말이겠다. 여러 가지가 한 군데 얼키고설켜 녹아 뒤섞이는 곳이 도가니인데... 

홍세화 선생이 '공화국'을 '부패'나 '삼성' 등 부정적인 용어와 연결지어 쓰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그렇다고 좋은 용어를 제시한 것도 아니었는데, 오늘 도가니를 읽고 보니, 부패나 삼성처럼 끌탕치는 사태와 어울리는 용어가 바로 도가니가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은 내용상 장애 소설이고, 사회 비판 소설이며, 추리 소설이고 여성 소설이며 법정 소설인 셈인데...
결국 이 소설 독파 후에 남는 것은 '부패의 도가니' 한국에 대한 오욕의 구역질 뿐이다. 

휠체어 타고 등장하는 넘들은 무죄가 되고, 김길태처럼 가난한 넘은 유죄가 되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원칙이 헌법 위에 자리한 '정글-도가니'를 국가라고 이름붙이기도 뭣하지만, 사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간 관계의 늪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한국 사회라는 공간이다. 

한 나라의 인권을 보려면 감옥과 같은 취약한 곳을 보면 된다고 하지만, 내가 오늘도 근무하는 이 학교, 수많은 사람들이 신규 교사로 임용되고 싶어 그토록 애태우는 이 학교도 그 취약한 곳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엊그제 인근 중학교의 한 교장이 뇌물 수수 혐의가 포착되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음독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경우가 발생했지만, 그 사람인들 그 돈을 받고 싶어 받았으랴? 거대한 시스템의 한 깃털이었을 따름인 것을... 언제나 몸통은 요지부동인데 깃털만 바람에 따라 흔들리다가 뿌리채 뽑히기도 하는 일인 것을...  

아침 8시 이전부터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복도에서 몽둥이 들고 감시하는 간수처럼 변질된 나의 교직 생활은 날마다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들지만... 이 거대한 시스템의 어느 구석에선가는 지금도 '공 모 전 교육감놈'처럼 '모르쇠'로 일관하는 새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자식의 느끼한 낯짝을 보는 일은 이 소설 속의 쌍둥이 범죄자들을 만나는 일처럼 기분 상하는 일이지만, 그런 경험은 뉴스를 접하다 보면 휠체어 투혼을 발휘하는 각종 회장님들의 쌍판때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모욕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27)
주인공은 부패의 도가니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진정한 인생? 인간의 혼을 쏙 빼놓아서 껍데기만 걸어다니는 것같이 의미를 찾기 어려운 상태를 진정한 인생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악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일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건지...

배배꼬인 실타래처럼 쾌도난마의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운 모순의 도가니, 한국,
거기서도 약자 중의 약자인, 여성, 장애자 중에서도 장애아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아이들, 그 중에서도 시골에서 부모가 찢어지게 가난하고 무책임한 아이들, 그러면서도 인면수심의 짐승같은 어른들을 만나게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아프고 슬프고 분노하게 하지만... 

무진의 안개를 뒤로하고 현실을 떠나 현실로 돌아오는 이 이야기는 비판적 시선을 <시민운동하는 여자> 정도의 그것에서 머무는 아쉬움이 있다. 그 약자 중의 약자들의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한 발만 빼면 천변 저쪽의 뉴 스트리트를 활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당신들의 천국'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 하다.  

그렇게 한 발 빼고 난 자리에 오롯이 남은 '홀더'는 어쩌면 생뚱맞다.
홀로 더불어라니... 없는 사람은 홀로 살고, 가진 자들은 더불어 사는 '부패의 도가니'를 풍자한 말이라면 모르되,
이 세상 어디에도 '홀로 더불어' 정신으로 사는 곳은 없어 보인다.

몸서리치게 징그러운 것이 인간이지만, 공지영의 이야기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 

창비처럼 큰 출판사에서, 것도 공지영은 대한민국 1등 소설판매인데...
한글맞춤법에 소홀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끼여들었다...를 쓴 곳도 있고,(끼어들었다...가 맞다.) 

94. 댓가를 쓴 곳도 있다. (대가...가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래어 표기법이 우습다. 

씨스템, 엘리뜨, 베떼랑... [짜장면]도 외래어라고 자장면으로 쓰는 판국에,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도 아닌 영어를 저렇게 표기하는 저의가 몹시 궁금해지는 1인... 

그리고 법정 스릴러라면, 치밀한 자료조사가 필수이거늘... 전교조가 비합법이던 시절 '조합원 명부' 같은 것을 법정에서 제출한다는 일은 사실상 어불성설인 것이다. 지금도 조합원 명부를 공개하는 것이 그토록 뜨거운 감자일 수 있는 것인데, 비합법 시절의 '명부'란 사실상 살생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작가가 전교조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