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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없게 가까운'을 재기넘치는 소설로 기억하는 내게 조너선 소프란 포어란 이름은 조금 기대가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어떤 작가의 가장 유명한 소설을 읽고, 그 다음에 읽은 것이 사실은 유명한 작품보다 먼저, 또는 작가가 최초로 쓴 소설임을 알게 되면, 왠지 처음 작품에 가려던 믿음이 뒷걸음질을 치곤 한다.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단 생각이 좀 든다.
9.11이라는 화제로 다양한 실험적 글을 써댔던 먼젓번 책에 비하면,
이 이야기는 몇 개의 라인들이 겹쳐지는 구조로 되어있어 시간과 공간이 오락가락하면서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든다.
원래 한 여남은 권의 책을 손에 잡히는대로 읽는 습관인 나같은 사람은 이런 책을 만나면 박박 밑줄긋고 읽든지, 아니면 주인공 이름 생각한다고 한참 멍하니 읽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의 '군인 & 축음기'는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면, 이 책은 멍때리며 읽은 편이다.
할아버지도 알렉스고, 손자도 알렉스고... 아, 난 백년 동안의 고독 이후로 이런 관계 정말 싫다. 사람을 분간할 수 없게하는 이름이란... 휴=3=3
2차대전 당시 할아버지를 나치로부터 구해 주었다는 여인을 찾으러 할아버지의 고양 트라킴브로드로 가는 손자의 이름은 또 작가의 이름과 같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 란 녀석이다. 이런 된장!!!
그에게 실제로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다면, 얼마만큼 진심으로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까...(249)
아, 이 젊은 작가(77년생)의 역사에 대한 통찰은, 인간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깊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목적으로 전쟁을 하고, 살상을 하는 모습에 대하여, 거기서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고 있는 인간들에 대하여... 이런 깊은 생각에 다다르기 쉽지 않다.
이야기가 얽힐 수록, <모든 것이 밝혀지는 듯> 보이지만, 책을 읽는 내게도, 아니면,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사실 밝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오리무중처럼 보인다.
우린 진실을 놓고 너무 유랑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진실에 대해 이렇게 유목민이 될 수 있다면, 왜 이야기를 실제 삶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지 않는 건지... 내가 보기에는 우린 이야기를 훨씬 열등하게 만들고 있다... 그랬다면, 일이 완벽하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슬픈 것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아무런 제한 없이 삶을 훌륭하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270)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조너선은 '밝혀진 것'에 대한 비밀을 들려준다.
폭포 옆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란다. 처음에는 두어시간 이상 집안에서 견디고 있거나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이며, 물소리를 뚫고 목소리를 전달하려면 고성을 지르며 싸우는 것. 그렇지만, 몇 년 지나면 들리지도 않는 폭포 소리처럼...
수년간 순수하고 확고한 비탄에 잠겨 나날을 보내던 과부들도 어느 날 아침 문득 깨어나 밤새 편안히 잤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도 어떻게든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는 법...
목재도 빛이 바래기 시작하고, 모서리도 무뎌지는 법, 상처도 사라지지.
어떤 사랑이든 상실로부터 깎여 나오는 거야.
그런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393)
이야기는 장강처럼 폭포처럼 장대하지만, 문체는 늘 재기발랄하여 독자를 즐겁게 한다.
그의 아내 니콜 크라우스의 작품도 <사랑의 역사>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같은 것들이 있는 모양이다. 만나게 된다면 읽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