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로맹 가리가 1944년 영국에서 '분노의 숲'으로, 프랑스에서 '유럽의 교육'으로 미국에서 '중요한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청소년들, (나이가 많은 녀석이 대학생 정도)이 전쟁터에 끼어들게 되고, 여자 아이는 식량을 위해서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몸을 팔기도 하고,
결국 교육의 가장 대척점에 선 '전쟁터'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아픈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의문이 계속 사라지지 않는 것은,
우리 교육은 갈수록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지점인데... 글쎄, 해결책이 보이지는 않는다.
전쟁터에서의 '유용한 작전'이란 비열하기 그지없는 것이고, 적군의 아내와 딸들을 능욕하는 것은 이미 전쟁터의 '정석'에 불과하다.
도브란스키란 대학생은 그 와중에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의 제목은 '유럽의 교육'
역사의 순간 속에, 전쟁과도 같은... 그럴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은신처, 피난처가 필요한데 그에게는 그것이 소설쓰기로 시작된다.
야네크는 윤리의식조차 희미해져버린 조시아란 여자아이에게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들려주기도 한다.(107)
조시아는 지구는 둥글며 자전한다든가, 맞춤법 등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보다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죽지 않는 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 그 답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194)
전쟁은 미친 어른들이 시작하는데, 결국 가장 큰 상처를 입는 것은 그 미친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다.
결국 야네크가 조시아에게 말하는 대목이 작가의 주제 의식이다.
주제 의식이 겉으로 드러나 좀 뻣뻣한 소설이 되긴 했다.
그가 그토록 비꼬아 말했던 이 유럽의 교육이란 것은 바로,
그들이 너희 아버지를 쏠 때,
또는 너 자신이 뭔가 대단한 명분을 내세워 누군가를 죽일 때,
또는 네가 죽도록 굶주리고 있을 때,
또는 네가 마을을 파괴하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거야.
우리는 훌륭한 학교에 있었어. 우리는 정말 교육되었어.(273)
유럽에는 가장 커다란 대학들, 도서관이 있고, 거기서 가장 훌륭한 교육이 이루어지죠.
세계 구것구석에서 사람들이 유럽을 찾아와요.
공부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 유명한 유럽의 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결국,
자기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281)
이 전쟁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적어도 참전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있다.
또 귀환해봤자 그들의 가정은 파탄이 나있을 것이다. (267)
결국 주인공 꼬마 야네크는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인간 세상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
눈이 먼 체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는... 그것이 바로 인간성.(269)
잔인하고 불가해한 세상,
우스꽝스런 잔가지 하나, 지푸라기 하나를 늘 더 멀리 끌고 가는 것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는 세상.
이마에 땀을 흘리고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늘 더 멀리!
숨을 돌리거나 왜냐고 질문하기 위해 한 번도 멈추는 법 없이... '인간과 나비들이'...(290)
인간과 나비들만이 개미들은 모르는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것>을 아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결국 희망을 잃지 않는 작품을 쓰려고 했던 것인데,
1980년 예순 여섯의 나이로 자살한다.
그의 에밀 아자르 행각과 여배우 세버그의 1979년 자살에 잇단 자살.
에밀 아자르 이름의 '자기 앞의 생'과 '가짜'는 정해진 이미지로 바라보는 세상에 마지막 조소를 튕기고 떠난 것은 아닐지... 과연 그에게 희망이란 것이 비추어지기나 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궤멸/괴멸'을 혼동하여 쓰이는 듯 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둘 다 비슷하게 쓸 수 있는 용어다.
궤멸 [潰滅] [명사] 무너지거나 흩어져 없어짐.
괴멸 [壞滅] [명사] 조직이나 체계 따위가 모조리 파괴되어 멸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