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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평점 :
이 가벼운 책의 첫 한 장을 읽으면서 내 머리엔 번쩍 떠올랐다.
아, 이 책의 이야기들은 이적지 읽었던 아지즈 네신의 '풍자 문학'이 아닌,
김영랑이 노래했던 '찬란한 슬픔'의 시절을 적게될 것임에 대한 예감이...
요즘 아이들더러 배부르다고 하고, 싹수가 없다고도 한다.
그럼 옛날 사람들은 어쨌느냐고 반문한다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옛날 사람들의 순수는 멍청함이었고 어리석음이었으며, 옛날 사람들의 배고픔은 극도의 가난함이었으며, 앞의 순수와 멍청함은 발달하지 못했던 문명의 이기 덕이기도 했고, 배고픔은 그 탓이기도 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수능 언어영역이 갈수록 퇴화되고 있다.
90분에 60문항, 그것도 지문 길이 1500자 내외였던 10년 전 문제가,
80분에 50문항, 그것도 지문 길이가 1300자였다가 급기야 1100자 수준으로 내려왔다.
다섯 문단이 되어야 글이 제법 정합성을 가질 수 있는데, 네 문단에 급급한 호흡이다.
그 배경에 컬러 텔레비전과 비디오 문화가 있다고 한다면 '조중동스러운' 성급한 일반화일까?
40대가 넘은 사람이 이 얄팍한 책을 읽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지즈 네신의 책이 이렇게 얇으면 아쉽기 그지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눈물을 찔끔거릴지도 모르고, 먼 산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자신을 발견할는지도 모른다.
괜히 비내리는 뿌옌 창밖을 바라보면서 그때 그 사람이라도 듣고 싶어질지도...
아지즈 네신의 문체는 밝고 맑다.
그렇지만 그 가난과 순진한 아이의 하루하루의 에피소드는 터키라는 나라와, 가난과, 비비꼬인 부조리한 국가라는 조직의 '국민'임이 얼마나 비루한 일인지를,
김훈 말대로 던적스럽기 그지없는 그것임을, 아이의 눈으로 깨끗하게 보여준다.
먼저 시비를 걸진 마라. 그렇지만, 상대가 싸움을 걸면, 선빵을 날리고, 이어서 마구 패라.
이런 싸움의 교훈을 주는 이웃 선배는,
(인생에서) 항상 내가 선빵을 날리고 상대를 마구 패면서 언제 마쳐야할지를 몰라 주저하면서 주먹을 날리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숨어서 나를 지켜보거나, 그 자리에 없다.
사람들은 제게 왜 풍자 작가가 되었냐고 항상 묻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절 풍자 작가로 만든 것은 저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물 속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24)
우리들 대부분은 가난이 무슨 죄라도 되는 양 부끄러워합니다. 저도 오랜 세월을 가난때문에 부끄러워했습니다.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두가 가난한 나라에서는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재산이 많은 게 더 부끄러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33)
이런 구절들은 그의 '야샤르'나 '당나귀'같은 작품들이 태어난 배경의 터키를 상상하게 한다.
터키는 여러 모로 한국과 유사한 모양이다.
케말 파샤와 박통의 위대한 영도력도 그렇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잘못을 했다고 해서 바로 다그치지는 않으셨습니다.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냥 지나치시곤 했습니다. 정말 잘하신 일인 것 같습니다. 그 영향은 훨씬 더 컸기 때문입니다. (37)... 아, 요즘 지나친 간섭으로 아이를 망치는 부모인 나에게 주는 말인지...
가난했지만, 가족애가 느껴지는 글 속에선 왠지 된장찌개 냄새가 폴폴 날 듯 싶다.
바람돌이님이 아직 안 읽으셨다면, 읽고 싶어서 근질거릴 그런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