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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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비루하다 :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치사하다 :  행동이나 말 따위가 쩨쩨하고 남부끄럽다.
  던적스럽다 : 하는 짓이 보기에 매우 치사하고 더러운 데가 있다. 

공무도하가... 한국 최초의 서정시 운운하면서 국어 시간에 배운 사람이라면,
중국 문학사에도 공무도하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모르리라.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사실이나, 한국이 발해를 자기 역사에 넣으려고 하는 사실이나 던적스럽긴 마찬가지다. 예전에 거기 사람들이 살았다면, 그게 무에 어쨌단 말인가. 어차피 그때 쓰여진 기록은 같은 한문인 것을... 

작년,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던 대통령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왔던 전임 대통령을 정권에서 괴롭히다가 죽여버린 사건이 있었다. 정말 비,치,던스럽던 살해였다.
그때 나는 공무도하 생각이 났다. 그대여 '하'를 건너지 마오. 님은 끝내 건너시네. 이미 빠져버렸으니, 나는 어찌하나.
중국에서 양쯔이하에서는 '강'이라 했고, 황허 이북에선 '하(허)'로 불렀다. 조선은 '수'라고 했다.
공무도하의 '하'는 예전 조선, 그 지명이 어디인지는 알기 어려운 만주 벌판의 노래다. 

김훈은 이 소설에서 비,치,던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어느 인간 하나 시원스럽게 꼿꼿한 모습이라곤 없다. 자기 삶의 언저리에서 되는대로 뒹구는 삶.
그리고 그들은 좁은 공간에서 얼키고 설켜있다. 지나친 연결이다.
하긴, 삶이란게 복잡한 스도쿠 문제처럼 부분적으로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신문 기자가 바라볼 수 있는 사건들, 침수 사건, 개에 물려 죽은 소년과 그 어머니, 백화점 화재 현장을 턴 소방관, 미공군 훈련지 바닷속에서 폭발물 잔해를 건져 먹고사는 사람과 베트남서 시집온 여자, 신장을 팔고 사는 사람들과 거기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 이것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기자가 마치 저자 자신인 듯 싶은데,
소설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인데, 거기서 이뤄지는 승리나 파멸의 이야기인데, 문정수는 마치 시에서의 화자처럼 '자아화'하는 느낌이 강하다. 

문체도 맛이 없다.
그렇지만, 시적 아포리즘이랄까, 아니면 수필의 한 구절로 쓰면 좋을 <언어>에 대한 감각이 팔딱거리고 뛰는 대목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런 구절들에 끌렸다. 

부사와 형용사는 품사로서의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 뒤섞이면서 흘러가는 언어. 형용사는 자동사에 접근하려는 성질을 가진 언어일 것. 정처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사전으로 정리...(122) 

차장은 다가갈 수 없고, 긍정할 수 없는 죽음들을 니기미 한마디 욕설로 단호히 버렸고, 해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죽음에 대해서도 짧고 선명한 욕설을 내뱉었다. 차장은 그렇게 해서 다루어야 할 죽음과 버려야 할 죽음을 선별했다. 니기미... 쓰발... 좆도... 옘병...(137) 

외마디 한국말은 폭양 아래서 땅에 코를 박고 일하는 베트남 고향 사람들의 몸냄새와 그들의 단순성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 외마디 한국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이어주는 한 가닥의 가늘고 희미한 끈처럼 느껴졌다. 잘, 또, 좀, 더, 꼭...(155) 

'인간'이라는 모호한 주어를 내세우면 그 뒤에 어떠한 술어를 붙여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떠한 술어를 붙여도 말이 안 되는 것이며, 따라서 장철수의 그 인간론은 문장으로 성립될 수 없다(162) 

타이웨이 교수와 영어로 주고받는 대화는 편안했다. 노목희에게도 외국어이고 타이웨이 교수에게도 외국어인 제3의 언어는 가볍고 서늘했다. 그와 주고받는 영어는 말이 거느리는 정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있었다.()203) 

파, 멀리서 온 풀이구나.
파를 한자로 총 蔥이라고 하잖아. 파미르 고원이 한자로 蔥嶺인데 파가 많은 고원이라는 뜻이래. 여름엔 지평선 가득히 하얀 파꽃이 핀대. 저녁엔 노을이 내려서 파꽃 핀 고원이 붉어진다는 거야.(211)
 

그가, 소설이란 치열한 인간의 삶냄새풍기는 장르보다는 사색에 잠긴, 자전거 여행다운 글들을 더 써줬으면 좋겠다. 스스로 적은 직업처럼, 자전거 레이서 말고, 그저 자전가 타고 세상을 슬렁슬렁 보는 조금 치열하면서도 많이 넉넉한 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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