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은 '밥벌이'란 용어를 썼다. 밥을 먹기 위해 벌어야 한다는 뜻이니, 거기에 벌써 일이란 것의 하찮음과 소중함이 다 들어있다 하겠다. 밥벌이란 말 자체가 담고 있는 뉘앙스가 구차함이고, 지겨움일텐데, 그에게 밥벌이가 기쁘냐 슬프냐라고 묻는다면, 글쎄, 아마 담배 한 대 붙이면서 씩 웃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보통의 지적처럼, 아이들의 동화에 등장하는 직업은 아주 뻔한 것들 뿐이다.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이나 빵집 아저씨 같은...
그러나, 그것을 한꺼풀 벗기고 생각해 보면 빵집 아저씨도 맨날 밀가루 식빵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온갖 재료를 반죽하여 온갖 모양과 맛의 빵과 과자를 연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빵을 위해서 농부부터 물류 담당자, 수출입 담당자, 중간 가공자들이 끼어들어야 하며, 빵이 생산된 이후에도 판매자, 배달자, 등등... 끝없는 일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 일들을 보통을 따라 붙어 관찰한다.
그런데, 이 책에 흑백으로 불친절하게 인쇄된 수많은 사진들은 마치 토익 시험 리스닝 테스트 10번까지 등장하는 무미건조한 사진처럼 보인다.
보통이 말하는 일의 무미건조함과 분편화된 소외감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다면 또 그렇게 많은 사진들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인데, 보통도 밥벌이의 지겨움을 좀 이해하는 사람인 것인지... 

참치라는 저주받은 생물은 부레가 없기 때문에 가차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해류 위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쉴 수가 없다. 그랬다간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죽고 말테니까... 

물류 편에서 참치잡이 배를 탄 보통이 관찰한 기록이다. 아, 보통의 매력은 이런 것인데, 이 책에선 이런 매력이 상대적으로 적다. 아쉬움이 컸다.

어쩌면 비스킷을 구우며 오후를 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상근직 직원 5천 명이 그 별것 아닌 일을 하는 회사가 았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사람도 많을 것이다.(84) 

비스킷 공장을 관찰하던 그는 이런 상념에 휩싸인다.
동쪽으로 흘러가던 구름이 헤이스의 유나이티드 비스킷 본사 건물 위에 낮게 걸려있는 음울한 날이면, 그 결과로 얻은 삶이 얼마나 의미있게 느껴지는지 묻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86)
역시 보통의 글맛은 이런 관찰의 눈에서 나온다. 

현대인의 '일'을 바라보던 보통의 상념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까지 넘어든다.
그녀는 노란 빛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그 표정을 보면 그녀의 생각이 어디 먼 곳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내원은 젊고 아름답다. 금살은 섬세하게 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왠지 가슴 뭉클한 연약함과 불안한 분위기가 돌봐주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욕망을 자극한다. (92)
93쪽의 사진에 정말 호퍼의 그림 한 컷 같은 여인이 컴터를 보며 멍하니 작업에 빠져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느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124)
아쉽게도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직업을 얻기 전에 가지는 착각이다.
직업 상담을 하는 이는 많은 이들이,
자신은 어떤 잘못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직관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진정한 '소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 괴로워한다. 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꿈이 없다고 나무라는 어른들이 생각해 볼 말이다.

상담사는 다수가 지나친 약속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140)
창작 지도 교사가 탐욕이나 감정 때문에 학생들 모두가 언젠가는 가치 있는 문학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 교사는 상담사와 마찬가지로 이런 유혹들 속에서 허우적댄다. 아쉬운 직업이다. 

예술이란 중요하지만 무시되어온 방향으로 우리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른다. (210) 동시에 그림은 우리 정신의 잊고 있던 측면들과 신비하게 결함된다.
예술가의 영감은 우리의 마음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도록 의도한다.  

신문을 본다는 것은 소라고둥을 귀에 대고 인류의 고함에 압도당할 각오를 하는 것.(263)
온갖 잡동사니 뉴스들을 마구 싣는 신문에 대한 그의 눈은 역시 상큼하다.  

어떤 회사 사장과 이야기를 20분 가량 진행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는 오랫동안 지구를 돌아다니며 냉방이나 난방이 조절된 공기를 마시고 회의를 주재하는 동안 그의 인격이 텅 비어벼렸을 거라고. 그는 아무 할 일 없이 방에 혼자 있어본 지 10년이 넘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 연민을 느낄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던 사람에게 그는 권태가 연민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284) 

그의 항공 산업과 관련된 글에선 '별'이 자주 등장한다. 역시 애스트로...는 별...이니깐.
우리는 가끔 별들을 쳐다보지만, 기본적으로 또 도전적으로 땅에 묶여 있는 피조물(348)이란 통찰은 영화 '아바타'의 상상력을 떠오르게 한다. 

보통의 <일>에 대한 통찰은 결국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우리의 하찮음과 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너무 지루해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과제가 넓게 보면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확고한 결의와 진지함으로 그 과제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자 하는 충동은 지적인 오류이기는커녕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악당 세포 몇 개만 거치면 바로 종말에 이르는 존재임을 잊어버리는 것. (366) 

매일 하찮은 일들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들에 지나치게 냉소적이기도 하고, 간혹 지나치게 진지하기도 하다.
<일>에 대한 기쁨과 슬픔을 거치면서 그가 얻어낸 일의 가치는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일 자체는 기쁨도 슬픔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이 책에 담긴 무미건조한 사진처럼 일에는 이렇다할 표정이 없다는 것.
그렇지만 매일 그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 밥벌이가 가능하므로, 우리는 거기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것임을 간혹 생각해 보는 일도 괜찮을 것이라는 것.
뭐, 간혹 생각하지 않는 삶도 또한 그럭저럭 괜찮을 것이라는 것.

보통의 책에서 간혹 등장하는 '대한민국'은 '삼성'이기도 했고, 특이한 철탑에 관련된 사진 도감이기도 했다.
간혹 망가진 비행기로 등장하기도... 이렇게 세계는 좁아지기도 했고,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은 혼합되기도 한다.
보통의 책에서 만나는 한국은,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의 <일>은 더욱 낯선 곳에서 벌어지기도 할 노릇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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