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시 - 언어능력 향상 프로젝트 초급
김주환.구본희.홍평기 지음 / 우리학교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는 쉽지 않다. 이런 것이 편견이고 통념이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시는 있을 수 있다. 

시란 것이,
짧은 언어, 짧은 이야기로 압축한 말로,
세상의 생각을 오롯이 담아낸 것이기 때문에,
간결하지만 결코 간단치만은 않은 것이다. 

오늘,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이 모의고사를 보는 날인데, 
그래, 선생인 나는 편안한 맘으로 문제를 보지만,
너희는 골몰하여 문제를 푼다. 

거기, 김광균의 '노신'이 출제되었다.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먼 기적 소리 처마를 스쳐가고
잠들은 아내와 어린 것의 베갯맡에
밤눈이 내려 쌓이나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
담배를 피워 문다.
쓸쓸한 것이 오장을 씻어 내린다.
노신이여.
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 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밤
상해 호마로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거린다.
여기 하나의 상심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노신 : 가난하지만 평생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았던 중국의 문인) 

삶의 팍팍함이 잘 묻어나는 시다.
이런 시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구차함을 겪어본 이의 마음을 읽을 나이가 되어야 느낌이 오는 시인데,
아이들 시험 문제에 '부정적 현실의 극복' 뭐, 이런 용어로 등장한다.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상 사는 것이 뭐 얼마나 부정적 현실에 대한 얼마만한 극복이란 말인지... 

재미로 읽는 시에는
말이 쉬워 재미있는 시와,
생각이 경쾌하게 잘 드러나 재미있는 시가 있고, 
재미있는 표현도 등장하는가 하면,
정말 어린아이다운 그야말로 초딩 3학년 같은 시들도 있다. 

그러나,
황지우의 <무등>이나 <527> 같은 시는 결코 재미있는 시가 아니다.
삼각형 산 아래 적혀있는 무등산의 의미. 역사를 모르고서는 읽을 수 없는 의미이며,
527은 광주 도청이 함락되던 날의 아침을 그린 시인데...
동사들의 연속체가 형상화하는 비극적인 시대의 아침을 비명없이 읽을 수 없게 만든다.
아, 황지우가 다시 그 비명소리를 듣고 있는가. 

요즘 언어능력 향상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책들이 많이 나온다.
시나 수필, 소설 등과 논술 대비 책들도 많다.
그저 읽는 걸로는 소화가 되지 않는다.
읽고 같이 이야기나누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저 문제 많이 푼다고... 언어 능력은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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