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 내가 걸은 다섯 갈래 길 8천 리
이난호 지음 / 범우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39년 생이니, 올해 한국나이로 71세다.
매년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간다. 남편이랑도 2번 가고 혼자서도 2번 가고...
할머니니깐, 시간이 많아서 언제든지 나설 수 있다.
그러나... 몸 걱정, 말 걱정이 앞서면 나설 수 없는 것이 이런 무지막지한 걷기 여행인데...
대단한 할머니다.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감성은 10대 소녀의 그것이다.
글을 쓰는 말뽄새도 영락없는 소녀다. 아니, 요즘 소녀보다 훨씬 풍부하다.  

팍팍하고 힘든 길을 십여 킬로 배낭을 메고, 온갖 생각과 맞서면서 길을 걷는다. 

제 몫하기란 뭘싸. 소유욕을 훑어내는 설사약은 없을까.(41) 

불문율은, 기대, 계획 불평을 말 것. 오직 감사할 것으로 세운다.(38) 

사랑을 재는 자는 그 사람의 일생보다 길어야 한다.(15) 

나는 항상 내가 옳다고 믿었다. 옳다고 믿는 걸 고집세웠다. 가장 큰 피해자는 남편. 그와 나는 다르다.(46)... 그가 길을 걸으면서 남편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은 나와도 같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걷는 일은 슬픈 육체를 경험하는 길이다.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누군가의 심부름꾼으로 살고 있음을,
내 삶이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슬픈 육체를 통해서 배운다. 

곧은 길에 멀미 나고 비에 젖은 꽃이 취한다.(100) 걷는 일은 취하는 길이다. 

카미노에서 만나는 선물들에게서 그는 '사람이 선물'임을 배운다.  

젊은이가 속옷을 비설거지 해줬다고 혀를 날름하는 천상 여자인 할머니. 귀엽기도 하고, 잔망스럽기도 하다. 

리비도가 꺼진 암컷 주제에 아직도 누군가의 베아트리체를 꿈꾸지?
아직도 혼자 추파를 리허설하지?
그러니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남을 의심했던 거야, 저질, 저질...(151)
참 솔직하고 정확하다. 제 맘을 이렇게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이라면, 참 슬픈 육체겠다. 

게르니카를 보면서, "도대체 우리에게 남의 나라 전설쯤으로 제쳐버릴 일이 하나라도 있는 걸까"하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 그가 얼마나 깊이 알지 모르지만, 슬프고도 슬프다. 

카미노와 감기의 비슷한 점은?
감기는 약을 안 먹어도 2주면 낫는다. 카미노들은 지도가 있는 이나 없는 이나 엇비슷하게 산티아고에 닿는다. 감기와 카미노는 같다.(300) 

그러면서, 성큼 내 나이에서 60을 빼고 서서 별전구를 세고 싶다...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나이를 먹는 일,
그걸 슬퍼하지 않으려면, 걸으며 살 일이다. 굳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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