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지음 / 해냄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변절하고 생명을 얻을 것인가, 생명을 버리고 대의를 좇을 것인가. 사람들은 노동의 새벽에 새벽시린 가슴위로 찬 소주를 붓던 노동 해방의 시인, 노해를 변절했다고 한다.

그는 애써 스스로 빙산이고자 한다.

빙산은 거친 바람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곳을 향하여 묵묵히 진행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람의 방향을 따르지만 빙산만은 엄청난 힘을 지닌 태풍의 진로마저 거스르며 제 갈 길을 꿋꿋이 간다. 빙산은 자기 몸체의 대부분을 바다 속에 두고 있기에 바다 표면의 바람이 아니라 바다 깊은 곳을 르르는 해류의 흐름만을 따른다...고.

그러면서 실크로드에 가고싶다고 했다.

보이는 것의 전부는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지평, 시선의 끝까지 이어진 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에 종말의 저녁처럼 붉은 노을로 해가 지고, 태초의 아침인 양 시뻘건 태양이 떠오르고, 아, 산다는 건 이토록 단순하고 강렬한 것인가. 이토록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허무인가....

그의 열망의 생명 의식은 유치환의 '생명의 서'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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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을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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