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4
고은 지음 / 민음사 / 197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십오년이 넘은 누렇게 찌든 책을 책장에서 뽑았다. 속표지에는 내 친구가 사준 책이라고 적혀 있다. 수정이는 참 시를 좋아하던 친구였다. 늘 시를 쓰고 읽고, 나중엔 자기 시를 내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한번도 시원스레 좋은 시라고 평해준 일이 없이 십년 너머 못만나고 있는 사실이 좀 아쉽다. 그 친구는 아직도 시를 쓰고 있을까? 가끔 아련하게 생각난다. 특히 고은을 보면. 그 친구가 고은을 짝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은의 '부활'이란 시집을 보고 누구는 일기장이라고 했다. 그렇다. 부활에는 '동해창망하라'로 시작하는 서사시의 부활이 있고, 우리는 보지 못하는 대자연의 섭리를 그의 눈은 읽어내는 신기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고은을 읽는다는 건 내게는 치열했던 청년 시절을 반추한다는 것이고, 관념적 세계의 지적 유희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의 후대 시가 훨씬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의 초기 시가 갖는 상징성은 나를 그의 시에 몰입시킨다.

고은을 읽으면 그를 이해할 수 없어서 좋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정확히 형상화되어 있지 않아서, 내 마음껏 내 상상을 하며 '동상이몽'의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만인보'를 싫어한다. 단순한 이유는 '만인보'는 돌아보기 싫은 내 젊은 스무살의 비극적 현실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만인보를 읽노라면, '동상이몽'의 몽환적 즐거움을 놓치게 되는 까닭에...

만인보에서 박혜정을 읽고 나는 울었다. 내 갈갈이 찢어진 속내를 어쩜 고은은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흘겨보고 있었을까. 아아, 그이는 이미 이생에서 흘릴 눈물 전생에 다 흘리고 난 이일까.

오랜만에 고은을 읽으며 세상 만물의 자리매김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강아지도 매일 킁킁거리며 확인하는 세상의 존재를, 무시하며 살고있는 내 어리석음을 통찰하는 아침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