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코스메틱끄
화장법.

이것이 아멜리 노통의 화두다. 화장을 해 본 여성이라면 알리라. 화장을 하기 전의 자기 모습과 화장한 뒤의 자기 모습이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를... 그래서 화장하고 난 뒤의 자기 행동은 화장하기 전의 자기 행동과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음을... 코스메틱끄는 나를 나 아닌 존재(타자)로 만들어준다는 비밀을 간직한 용어이다. 나는 나인가? 나는 나라고 주장한다면, 화장을 해서는 안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화장을 싫어하는 이유는 '나'라는 여성을 부정하면 페미니즘 자체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화장술은 페미니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내 속에는 내가 아닌 나(非我)가 들어 있다. 노통은 열 두 살 때부터 자라온 창조적 파괴자인 非我를 찾아내서 그릴 뿐이라고 한다. 참으로 솔직하고, 정직할 따름이다. 나도 아무에게도 보인 적 없고, 보일 수 없는 열두 살의 창조적 파괴성을 떠올릴 수 있다. 사춘기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殺意 번득이는 시절이 있었다. 그 非我를 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를 무의식중에 잊고 살다 보니 적이라는 것도 잊고 만 것일까. 노통은 그 오랜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非我를 살려내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이 책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런 메타포를 읽어내지 못했을 뿐이다.(그의 '적'은 프로이트의 'id'의 다른 번역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기의 경험을 '텍스트'로 구성해 냈을 따름이다. 박진감 넘치는 긴박한 대화를 통해서 직조하듯이 자기의 경험을 얽어내는 데 성공했다. 화장한 모습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섬뜩함을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我와 非我의 투쟁'을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은, 모순의 변증법적 통일체로서의 '나'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인생은 생로병사의 과정이라 한다. 태어나고 늙어가며 병들고 죽는 것이 고통이라고 한다. 난 이 말에서 궁금한 게 있었다. 태어나는 게 왜 고통일까... 나이를 들어가며 느끼는 건, 生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란 거다. 산다는 것은 가장 큰 고통이란 말이 아닐까. 그래서 생로병사의 제일 화두가 '生'이 아닐까?

신경림 시인이 발견한 '갈대'의 울음처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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