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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이란 이름은 자주 들어 왔지만, 막상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난 이상하게도 베스트 셀러나 느낌표! 책으로 선정되거나, 서평이 좋은 글들은 잘 읽지 않는 습벽이 있다. 아마도 대학 다니던 시절부터 신문을 맨 첫장부터 읽지 않고 맨 뒷장 맨 아랫단부터 읽던 습관이 이런 행동으로 굳었는지도 모르겠다.
노통이란 특이한 이름 때문에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해 봤더니 앳되어 보이는 소녀 얼굴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서평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작가, 새로운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가 읽지 않는 부류의 작가로 충분히 찍힐만 했다. 젊은 나이에 이름을 얻은 것은 천민 자본주의의 속물 근성이 더께앉은 상혼을 감추기 위한 뉴 페이스일 가능성이 많은 법이니까.
처음으로 읽은 <오후 네 시>는 기대 이상이다. 마치 귀여니의 <그 놈은 멋있었다>를 치기어린 장난으로 여기다가 읽고서는 의외로 놀랐듯이. 우선 그의 글쓰는 방법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에밀과 쥘리에트란 노부부의 평화롭기 그지없는 천상의 세계를 묘사하다가, 점점 그로테스크해 지는 이웃(베르나르댕)의 출현과 오후의 두 시간, 베르나데트 부인의 엽기적 묘사와 식성은 마치 교향곡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조용하게 시작한 전원 교향악으로 시작해서 새소리, 시냇물소리 들려주다가, 마왕의 울림같은 긴박감이 고조되다가, 운명으로 마감하는 듯 한, 감미로우면서도 장엄하고, 때론 이해하기 힘든 것이 음악이자, 소설이자, 인생이 아닐까.
원 제목은 카틸리니의 국가 전복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에서 따온 논박, 야유를 가리키는 'Les Catilinaires'다. 천사와도 같은 소심한 주인공이 상황에 밀려 이웃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엽기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대목은 우리에게 감추어진 무의식들을 의식의 세계로 드러내려는 듯 전율하게 만든다.
그의 글들을 프랑스어로 읽었더라면, 그리고 프랑스 문학에 대한 소양이 깊었더라면 좀더 재미있게 읽었을 수도 있었을 걸... 하는 생각이 아쉬움과 남는다. 다른 작품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가다. 귀여니처럼 늑대의 유혹을 읽고 절필을 당부하지 않게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