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콘트라베이스라는 관현악단의 작은 역할을 맡은 연주자가 내뱉는 푸념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중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쳤던 현이의 연극, 내가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북치는 역할을 맡았던 영수(? 뭐 그런 흔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피천득의 플루트 연주자가 떠올랐다.

현이의 연극은 작은 역할을 열심히 하는 아이를 보고 대견하게 여기는 엄마의 마음을 썼고, 영수의 기악합주는 '작은 역할도 성실히'의 이면에 담긴, 무조건적인 복종이 담겨 있는 선동과 세뇌의 이야기였고, 플루트 연주자는 콘트라베이스, 바순, 팀파니, 플루트 연주자들처럼 오케스트라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들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또 항상 전체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사는 삶이 가치있다는 생각을 잔잔한 목소리로 전해 준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스켈소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 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부러워한다... 는 피천득의 수필을 읽노라면, 세상을 팍팍하게만 살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고 여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글을 읽고 나면, 그런 여유보다는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가엾은 소시민적 삶이 드러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알-싸-하다.

<향수>에서 인간의 세계와 동떨어진 그르누이를 창조한 그는 , 인간 속에 파묻혀서도 고독하고 소외당하는 인간의 독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울먹이다가, 용기도 가져 보지만, 다시 우울해지고, 미칠 듯한 비명을 지르는 한 사내를 통해서 현대인의 울적하고 우울한 심사를 대리 분출시키려는 글일지도 모른다. 그의 해박하기 그지 없는 전문적 묘사가 탁월한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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