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별로 사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베스트 셀러 자리에 얹혀 있는 걸 보고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 읽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여름 피서지로 가장 좋은 곳을 꼽으라면, 집 주변의 까르푸와 이 마트를 찾는다. 거기 가면 없는 게 없기 때문이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우선 앉아 쉴 자리 있고, 에어컨이 있고, 책방이 있다. 목 마르면 음료수가 있고(계산 후 드시라고 안내하지만, 목말라서 산 음료수를 마신다고 죄는 아니다), 간혹 장보기도 쉽다.

어떤 날은 몇 시간씩 책만 읽다가 그냥 나오면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젠 별로 미안한 수준을 뛰어 넘었다. 깊이있는 독서는 어렵지만, 베스트 셀러를 읽기엔 딱 좋다. 이런 서평이 알라딘같은 책방 주인에게는 치명적이겠지만, 책 사랑이라고 붙여 놓은 사이트에서 비난하진 못하리라. 아무튼 야금야금 읽다 보니, 그것도 순서대로 읽지도 않았다. 처음엔, 왜 '나무'인지... 나무 이야기부터 읽었고, 그 뒤의 수 이야기도 읽었다. 그러다가 또 '손이가요 손이가...' 하다 보니 다 읽었다. 감동은... 별로 없었다. 그저 좀 재미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빨래집게를 가지고 잘 놀았다. 빨래집게의 다리가 두개였기 때문이다. 전투를 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쓰시고 두 개 남으면 멜로물로 놀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어른이 되면서는 많이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는데, 베르나르를 보니 아직도 상상력을 놓치고 있지 않아 좀 부럽다.

그러나, 개미와 같은 역작은 역시 그에게도 무리인가. 수학자 가우스가 열 살도 안 돼서 수열에 대한 공식을 만들어 내고 스물도 안 됐을 때 수학적 정리들을 내세웠지만, 만년에는 별 볼 일 없는 수학자였다던가. 중국의 왕필(왕 삐)이란 학자는 노자 도덕경을 주해 했는데, 지금도 그 책이 가장 탁월한 해설서라고 하는데, 그의 나이 열 여섯 이었다고 한다. 베르나르를 읽으면서, 개미때의 통쾌한 감격은 없다. 개성을 갖춘 개미들의 의식 세계 속에서, 인간의(손가락들) 삶을 조망하고, 과학적 만남을 바라보는 감격적인 그 픽션의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개미'에는 혁명적인 사고라는 엑소더스가 있고, 차원이 다른 세계라는 스타워즈가 존재한다. 탁월한 상상력과 판타지 소설의 재미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역작이었다.

그 뒤의 타나토노트나, 개미혁명(이건 정말 유사품으로서, 1편 만한 2편 없다를 여실히 증명하는 졸작이었다.), 뇌 에서도 '별로임'으로 읽었다. 나무 역시 그렇지만, 재미는 있고, 시야의 확장을 보여주는 흥미는 인정, 동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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