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일주 삼성 어린이 세계명작 10
쥘 베른 지음 / 삼성출판사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부산시 교육청에서 초등학교 4학년 권장도서로 선정한 책이다. 아이에게 읽히기 전에 읽어 보았는데, 내가 어렸을 때 사정이 나빠서 이 책을 읽지 못한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느꼈다. 얼마나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영국인의 시각인가. 얼마 전 제인 구달의 글을 읽고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리라.

영국 런던에 사는 필리어스 포그라는 돈 많은 백수는 편집증적으로 정확함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카드 친구들과 이야기 도중, 세계 일주에 80일 걸린다는 획기적인 뉴스를 듣고, 실천에 옮긴다. 배를 타고, 유럽 대륙을 기차고 건너고, 수에즈 운하를 지나 인도의 봄베이에서 산을 넘어 코끼리를 타고 다시 중국의 상하이, 일본을 거쳐 샌프란시스코 미대륙 횡단, 대서양 횡단, 영국 도착에 시간이 늦었으나, 알고 보니 그는 동쪽으로만 계속 가서 80일을 시간을 소모했지만, 영국에서는 79일 밖에 지나지않았다는 이야기다.

백수 건달이 끝도 없이 돈을 써 대는 허풍노릇에 우선 질릴 지경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음을 보여 주는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와 홍콩은 그야말로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닌 괴물들의 지옥으로 묘사된다. 일본의 우스꽝스런 묘사도 마찬가지다. 역시 인간다운 인간이 사는 곳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밖에 없는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이던 시절에 쓴 소설이라는 걸 염두에 두는 나같은 독자에겐 그닥 해악을 끼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제3세계에 가까운 우리 나라가 의식만 제국주의 편에 서게 되지 않을지 상당히 걱정스러웠다. 안 그래도 우리 나라는 미국과 가깝다는 이유로 아랍권에서는 상당히 견제를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권하기 전에 어른들이 꼭 먼저 읽어 볼 일이다. 정말 평화를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책들이 얼마나지천으로 깔렸는데, 이런 제국주의 시대의 망령이 활개치는 파렴치한 모험담, 허풍선이 영국인의 이야기를 아직도 읽히는 나라는 아마도 세계에서 몇 안 될 것이다. 혹시 모른다. 영국과 한국 두 나라일지...

이 글을 읽고 미국과 손 잡고 이라크 전쟁에 설쳐대는 '악의 축' 영국을(사실은 미국이 축이고 영국은 별로 축도 못 되는 게 현실 아닌가) 정확한 신사의 나라, 돈 많고 인심 좋은 나라, 세계를 주름잡는 세계의 중심, 동양의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구세주로 인식하는 충실한 독자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발 다음부텀은 권장도서에서 꼭 빼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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