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희망에도 이유가 있을까. 아무 이유 없이, 긍정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희망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막연히 희망에도 어떤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제인구달 - 그녀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환경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에 제인구달만큼 환경과 동물 사랑에 앞장서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대단한 정열로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온 밀림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많은 어려움에도 부닥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정치적인 갈등 사이에서의 수난, 결국은 세계를 향해 동물 사랑의 메시지를 던지는 수호자의 자리를 자임하고 나섰다.

나는 오늘도 미역국을 두 번 먹었다. 그 미역국에는 소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가에 다녀 오는 길인데, 초상집 술상 위에도 돼지고기 수육이 올라 있어서 술안주로 맛있게 먹고 왔다. 그리고 지금 내 무릎 위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한 마리 졸고 있다.

이론상으로야 제인 구달처럼 인간만이 고통을 겪고 사랑을 나누며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짐승이 아니란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아주 합리적이다. reasonable한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것만이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자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동물을 잡아 먹으면 그것은 합리적이고, 인간이 개고기나 소고기를 먹으면 그것은 잔인하다는 말인가. 그러면 인간도 배고프면 아무 것이나 - 침팬지처럼 미운 놈의 새끼를 대가리부터 아사삭 부셔 먹으란 말인가.

서양 사람들은 리즈너블 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자기들의 이야기가 옳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옳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 고통받는 짐승들이 지구 상에 수두룩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평화롭지 못하게 대우 받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의 동물사랑을 읽으면서, 계속 서구인의 오만함, 배부른 자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뭔가를 탐험하는 이야기들의 시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환경은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간이 중심에 서야 한다. 짐승을 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그도 인정하지 않는가.

그의 침팬지와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내 눈에는 배고픈 자의 그것 같지는 않아서 존경하는 한 편으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내 무릎 위의 강아지는 지금도 코- 하고 잘 자고 있다. 이 녀석을 솥에 넣고 삶은 상상은 나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고기 먹는다고 하찮은 존재로 폄하하는 것은 긍정할 수 없다.

고기를 먹고도 옳게 살 수 있고, 고기를 안 먹고도 옳게 살 수 없는 인간이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심어 주고, 환경의 소중함을 길러 주는 것은 보람찬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인도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는 그것보다 우선되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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