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기행 1
박재동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바리데기와 함께 가는 서역 삼만리... 비단길.. 실크로드.. 예전에 비단을 서역으로 전달하던 길이었다는 피상적인 의미 이상으로 아름다운 비단길. 실크로드. 화백의 말마따나 둘 다 참으로 함부로 쓰기 아까운 낱말들이다.

삼십사일간의 서역 여행길을, 밀양 배내골 원불교 수련원에서 콸콸 쏟아 내리는 계곡 물소리와 매암매암 한창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매미 울음 소리와 선선한 늦여름 밤중의 보름달(이제 한 달이면 한가위니 가을도 다 되었다)을 느릿느릿 감상하며 잘 읽어 내렸다.
원래 박재동 화백의 그림을 좋아하는 데다가, 실크로드 라는 꿈의 길에 얽힘 글이라 한 장 한 장 넘기기 아쉽게 읽었다

우리와 같은 스키타이 계통의 말들이라 그런지, 참 곰살맞은 단어들이 많다. 등장인물들의 멋대로식 어원 풀이도 그럴듯하게 들리고, 광막한 광야와 사막과 설산과,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사람, 사람,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 아이들, 가장 순수한 아이들.

화백이 그린 인간의 종류는 이렇게 두 종류였다. 아이들과 사람들... 등장인물들이 '절대론'과 '상황론'으로 풀이하곤 했던 많은 현상들... 시대와 환경에 상관 없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는가? 있다. 바로 아이들의 눈망울. 그걸 내려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순수해 질 수 밖에 없을 것. 더욱이 부모임에랴... 어른들은 상황론에 맞게 변화하겠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차이,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눈매와 퍼주는 인심이랑 관광지의 닳아 빠진 상인들...

그러나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고 온 박재동 화백의 이야기 속에서 가 보지 않은 그 길들이 오롯이 살아 있다. 나도 고산 지대를 오르는 듯이 숨가빴고, 국경을 넘어 긴장했고, 수없이 크게 박힌 별들과 쏟아져 내리는 달빛에 마음이 녹아 내렸고, 가도가도 끝없는 강물 줄기 따라 마음도 덜컹거렸고, 넓은 초원과 호수 속에 눈길 아스라이 던졌던 머나먼 여행.

중원의 하나됨을 역설하는 중국인의 포용력과, 깨끗한 사람들이 사는 파키스탄... 어디서나 행복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때묻지 않은 세상이 있음을 읽으면서 나 또한 행복해 졌다.

'행복하고 싶은가? 남을 행복하게 해 줘라!' 바리공주가 서천서역 수만리 험하고 험한 길을 달려온 그들에게 줄 감로수가 바로 이 말인지 모른다. 몇 년 전, 류시화의 인도 기행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의 '노 프라블럼'이 떠오른다. '돈 워리, 비 해피' 아닌가. 하쿠나 마타타(라이온 킹에 나오는 걱정할 거 하나 없다는 말)

달라이 라마처럼 행복하려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읽으면서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문명인으로서의 나와, 나처럼 많이 읽지도 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이 행복함을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그이들 중, 과연 누가 더 행복할 수 있는가. 행복에 가까이 있을까.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인가.

수많은 화두를 던져주었던 이 책을 덮으면서, 다시 한 번 삶과 나의 존재에 대해 명상에 잠긴다. 도서실에서 빌려 본 이 책은, 정말 오랜만에 가지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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