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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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 때는 독후감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서론을 읽으면서부터 뭔가 잘못 접어 든 길에서 당황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환갑을 넘긴 일본인의 독서 편력과 책에 대한 집착을 바라보면서, 정말 대단한 책벌레이구나,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일본의 독서 환경을 부럽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우리 텔레비전에 나오는 책을 읽읍시다 라든지, 도서관을 세웁시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던 우리 독서 문화의 후진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일본에 수십년 뒤져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다느니, 업다느니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도서관이 없고, 책 읽는 사람이 없는 우리 사회를 보면 어두운 건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서점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 어린 아이들을 보라. 희망의 불빛이 보이는가? 절망의 미래가 보인다. 전부 귀신 이야기에 머리 쳐박고 몰두한다. 그나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아이들은 훨씬 나은 편이다.

그의 독서 지도는 독특하다. 일단 돈을 아끼지 않고 책을 산다는 점은 부럽다. 나는 이사다닐 게 두려워서 책을 못 사고 있는데... 그리고 그의 책을 읽는 게 재미있다는 삶이 부럽다. 나는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책을 잡지 못하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든다. '나를 찾는 시간'을 갖고 싶은 요즘. 피아노를 바이엘부터 치기 시작했다. 한 달만에 바이엘 상권을 떼고 이제 하권으로 들어간다. 숨쉬기 운동도 하면서 소화가 훨씬 가볍게 된 것을 느낀다. 그리고 책을 종일 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찬물에 발 담그고 책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나'임을 느낄 수 있다. Ich bin Ich.

내가 나라고 느낄 수 없는 시간도 많다.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수업 시간. 쓰잘데기 없이 인간들이 모여서 지껄여대는 회의시간(나는 직원 회의, 전체 조례 이런 것을 선천적으로 증오한다), 별 일도 아닌데 모여서 마셔야 하는 술자리(많은 사람들은 술 자리에 꾸준히 참석 하는 것이 인간성과 비례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술의 후유증으로 아무 것도 못하는 비인간적 상태, 지독한 잡무와 쓰잘데 없는 연구 등등..., 속썩이는 학생들과 아무 교감없는 지도로 신경을 상할 때..., 운전대 잡고 앞차 꽁무니나 쳐다 볼 때(시간이라도 느긋하면 틈틈이 호흡 연습이라도 하지만, 시간이 빠듯하면 정신 나간 운전수가 된다)

느긋하게 책을 잡고 있는 즐거움. 책 속에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시공을 초월한 선배들을 만나면, 반갑고, 설레이고, 고맙고, 눈물이 나려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 편력을 보며, 나의 빈약하던 어린 시절을 안타까워하였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도서실에 간 건 '공산당의 잔인함, 남북의 다른 생활' 조사하러 한 번 갔었다. 그 당시 도서실에는 엄청난 분량의 반공 도서가 즐비했다. 또 한 번 가서는 닐스와 기러기? 라는 책을 한 권 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성서 이야기 보다가 포기했고, 안데르센 동화집(글씨가 8포인트 정도 되는) 2학년 때 읽었고, 서유기 4학년, 셜록 홈즈 5학년, 장발장 6학년 이게 거의 다 인 것 같다. 아, 누나가 보던 공상 과학 소설도 몇 권 읽었다.

중고교 시절에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의 분량(한국 단편은 거의 섭렵했지만, 국어 교사인 지금도 그걸 읽은 게 무슨 도움이 된 것인지 아무 느낌이 없다.) 갈수록 도서 환경이 열악해 지는 비쥬얼 시대의 후세들에게 속히 독서 풍토를 물려주려는 운동이 일었으면 한다. 아파트 도서실 운영 등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지역 도서실 활성화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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