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턴가 한국의 산등성이에서 우러나는 정서를 대신하게 된 풍경이 아파트의 고도다.
스카이라인이랄 것도 없이 획일적인 아파트, 그러나 거기 사는 사람들은 20평 아파트냐 70평 아파트냐를 따진다. 물론 70평 아파트의 주차장은 주차공간이 더 넓고, 거긴 외제차가 수두룩하다.
발레리 줄레조가 2004년 한국의 아파트 경관을 조사한 연구가 실시된 이후, 전상인의 이 책은 한국인의 삶을 자세히 분석해 보고 있다.
아파트에 비추어진 한국인의 자화상을 낱낱이 살피면서 미래까지 조심스레 짚어 준다.
한국의 아파트는 '부'의 축적 수단으로 기능했고, 이젠 '신분'을 드러내는 수단으로까지 되었다.
사회공동체를 분해해버렸고, 어떤 아파트에 사는가가 당신을 말해주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초창기의 아파트가 토건국가와 건설자본의 입장에서 기능했다면,
최근의 중상층 이상의 <과시형> 아파트는 실용적인 면적을 훨씬 초과한다.(71)
아파트의 이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미 낮은 신분'이 되어버린다.
언어의 이데올로기.
특권층의 <더 프레스티지>, 오르고 또 오르는 <더 샾 #>
왕족이나 귀족 거주지란 <팰리스, 하임, 스위트, 카운티, 캐슬>
웰빙과 자연, 건강을 강조한 <상떼, 파크, 리버, 그린, 힐>
신분 상승을 꿈꾸는 <캐슬, 팰리스, 경희궁>
지식정보 사회를 나타내는 <자이, e, I>
가정의 행복을 뜻하는 <훼미리, 네스트, 마더빌...>
결국 아파트 브랜드만으로도 상류사회의 지향점, 목표를, 그 얄팍함을 읽으면서 씁쓸하다.(81)
과도한 이웃 사촌의 간섭과 지나친 친근함을, 그리고 셋방살이에서 겪는 주인집의 설움덩어리를 현관문 하나로 '콱' 닫아버릴 수 있는 아파트.
한국 사람의 깊은 심중에는 더러 '섬처럼 살고 싶다'는 욕구가 내재되었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의 삶, 혹은 가족 단위의 공간적 프라이버시에 대한 내적 갈망의 오랜 누적이 폐쇄적인 아파트를 차라리 선호하게 된 것인지 모른다는 분석엔 꽤 수긍하게 한다.(96)
아파트 거실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벽걸이형 티비>로부터 소파, 에어컨 등으로 드러나는 생활인의 삶은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이자 가장 큰 수혜자인 중간계급의 일반적 주거공간>으로서 아파트를 규정한다.(줄레조, 131)
그래서 내가 근무했던 실업계 학교에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도 별로 없었던 거다.
어쩜 그렇게 빌라에 사는 아이도 적은지... 역시 아파트는 계급 재생산에 기여하는 모양.
전세마저도, 임대주택마저도 자력으로 입주하기 어려운,
소득을 통해 주택을 소유하는 일은 보통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먼 꿈인데...(178)
결혼할 때 아파트 전세 하나라도 얻어줘야하는 풍조는 평생을 아파트에 목매달고 사는 인종으로 만들고 만다. 결국 아파트는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거주지로서의 가치보다 훨씬 큰 것인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고, 그것도 중상류층은 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특이한 나라.
그 사람들을 관찰한 줄레조에 이은 전상인의 책을 읽는 일은 '장기하 노래'처럼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씁쓸함과 '그렇지, 그랬어'하는 동감을 던져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