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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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참 귀중한 연수를 들었다.
봄방학이라 쉴 수도 있지만, 좋은 공부를 할 때면 쉬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그야말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였다. 
수능 주관처인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출제 팀장님들이 어려운 시간을 내서 부산으로 발걸음을 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하여 문항 출제를 위한 다양한 시각과 팁을 듣고, 실습까지 하게 된 시간을 통하여 교사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출제를 하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던 이야기 중, 수능 때 우리나라 교수들은 길게 40여 일 합숙을 하는데, 물론 교수 섭외가 쉽지는 않지만 대체로 쉽게 승낙을 하는 반면, 외국인들은 그런 합숙을 견디지 못한단다. 영어 듣기 평가에 원어민이 참가해야 하기때문에 그들이 함께 합숙을 하고 갇혀 지내야 하는데, 자유로운 영혼들에게 감옥같은 생활을 제시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란다. 군대도 가지 않은 그들에게... 

씁쓸했다.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지금 용산에서 아직 3천 여명의 시민들이 '용산참사 범국민 시민대회'를 열고 있고, 그 주위를 수만의 경찰 병력이 바퀴벌레 등딱지같은 헬멧을 쓰고 둘러싸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자유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보리밭에서 종달새가 날아 오르듯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민중의 반란은 철저하게 응징청의 대상이 되었던 시민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던 이 비극적인 땅에서 아직도 자라나는 학생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복종>이 체화되고 있는 중이다.  

학교엘 가면 우선 군복 대신 교복을 입어야 하고,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
남학생이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니거나 얼굴이 좁아 보이게 기르는 일은 불가능하다.
여학생도 생머리를 풀고 다닐 수는 없다. 핑계는 학생 보호다.
교사인 나로서는 한편 동의하는 면도 있지만, 거부감도 많다.
그리고 정해진 50분 정도의 시간에 천여 명이 식사를 마쳐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운동장 내지 체육관에서 군인들의 사열과 같은 전체조회를 하고, 그때마다 일제시대의 동방요배와 같은 순서의 식이 진행된다. 지긋지긋하다. 

생활지도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사소한 잘못으로 질책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넥타이가 없다거나 등교 시간을 1,2분 넘겼다는 이유로 기합을 받고, 머리가 길면 간혹 가위질을 당하기도 한다. 물론 상습적으로 규범을 어기는 학생들은 더욱 강한 제재를 당하기도 한다.
흡연을 했다거나 거짓말을 했을 경우 각목으로 구타를 하는 일도 있고, 증거 확보를 위해 흡연자 적발을 위한 흡연치수측정기도 있고, 으슥한 곳에는 cctv도 설치하고 있다. 

갈수록 아이들의 비행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범죄의식이 약해지는 문제가 있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수십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단속하는 것은 실효가 없어 보인다. 

어른들은 늘 아이들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다.
아이들은 늘 불안하게 자라는 중이다. 열일곱 살의 털은 아이들의 자존심이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그들의 머리에 별을 그려주는 멋쟁이 할아버지가, 세입자들의 철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야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리 쉽게 바뀌지야 않겠지만... 

학생들의 '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학생부장 역할을 맡게된 나에게 온 '열일곱 살의 털'은 나를 더 고민스럽게 만든다. 과연 진로상담을 앞에 내세워 아이들을 덜 억압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줬으면... 하는 것이 어른들의 바람이지만,
아이들이 밝지만은 않은 미래를 위하여 치열하게 노력하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임을 또한 아는 내가 아이들의 '털'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지금 고등학생 안단테가 시민대회에 참여했다가 연행될 뻔한 것을 시민들이 겨우 빼냈다고 한다.
작년에 자유로운 영혼의 대명사 강의석 군이 십여 년만에 대로에 나선 탱크 앞에 나섰다가 논란을 제공한 일이 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자유'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의지로 '지향'해야할 것으로 '저만치' 떨어져 있다.  

창백한 이론서로서의 교육학과 먼지구덩이 교실 안에서의 행위 사이의 간극은, 별을 스치는 바람과 나의 상념 사이만큼이나 멀고 아득하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열일곱 살의 털을 이유없이 깎이는 학생부장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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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3-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들이 리뷰대회에 요 책으로 우수리뷰 뽑혔지요.
중학교 2학년때 학교 담도 넘어다녔다고 썼더라고요~ 허걱, 아들의 재발견!ㅋㅋ

글샘 2009-03-02 01:38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늘 재발견의 대상이죠. 자기들도 자신을 모를테니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