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줄로 인용하는 연습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 줄로 인용한다는 게 뭐냐?

먼저 인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오는 것을 인용이라고 합니다. 원문 주요 구절을 정확히 옮기기 위해 우리는 먼저, 가장 중요한 구절만 따서 한 문장으로 옮겨보는 연습을 해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메모하기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요?
차이가 있어요.

메모는 보거나 들었던 내용, 또는 떠올랐던 생각을 자기가 보기 편하라고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 말이라고 해서 꼭 똑같이 옮길 필요가 없어요.
나 혼자 쓰는 컵이니까 대강 씻어도 돼요. 대충 헹궈서 마시면 돼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마셔야 할 컵이라면?
깨끗이 씻어 놔야 하죠. 물은 셀프니까요.
누가 마실지 몰라요. 누가 읽을지 몰라요.

인용은 남들 마시라고 마련해 둔 물컵이예요.
인용은 남들을 위해, 즉 독자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자신이 인용한 글은 박지성이 읽든, 이천수가 읽든 보편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다 똑같이 읽어야 해요. 출처를 정확히 밝히고 그대로 옮겨 적으면 보편성과 객관성은 저절로 갖춰집니다.

인용은 메모보다 한 단계 상위 기술입니다.
메모를 잘 한다고 다 인용을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인용을 잘하는 사람은 당연히 메모도 잘 합니다.
인용이 더 어렵거든요.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게 글쓰기입니다.
말을 할 때는 뻥을 약간 섞어서 해도 별로 티가 안 나지만 글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인용도 그래요.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손님들을 자기 집에 묵게 하면서 신장이 자기 침대보다 길면 도끼로 잘라내고, 침대보다 짧으면 다리를 억지로 길게 늘여서 죽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메모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아요.
자기 편한 대로 줄였다 늘였다 하는 거죠.
메모할 때는 앞뒤 조금 자르고 이해하기 편하게, 필요한 것만 적으면 되지만
인용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메모를 인용처럼 포장하고 가장하는 글이 가장 나쁜 글이에요.
식자재 판매하면서 원산지 표기 무시하는 넘들이 있죠?
이넘들이 바로 메모와 인용을 혼동하는 작자들입니다.

인용을 하려면 독자를 향한 투철한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게 최고 서비스입니까?
원 뿌러스 원이 최고 서비스인가요? 아니죠.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원산지 표기, 내용물 표기 정직하게 하는 게 진짜 서비스죠.

인용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남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게 직접인용이고,
남의 말을 자신의 말투로 옮기는 게 간접인용이죠.
둘 다 필요해요. 그렇지만 둘을 섞어 쓰면 안 됩니다.
뭐뭐...했다 라는...
이 표현부터 고쳐야 합니다.

SBS 뉴스 - 아직은 환율이나 실적이나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 아니라는

한겨레 - 두 차례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은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진정한 세계 최고는 아니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 아니라는

조선일보 - 근본적으로 촛불집회를 막는 것이 위기탈출책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정부가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아니라는

한국경제 - '믿음'을 쌓을 수 있는 노력을 제대로 안 한다면 결코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없다라는 것이 내 신조
=> 없다는

직접인용을 하든지, 간접인용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하세요.
직접인용보다는 간접인용이 한 단계 상위 기술이지만,
오늘은 직접인용 연습만 해보겠습니다.
직접인용을 완벽하게 할 수 있어야, 그 다음 단계 기술인 간접인용을 잘 할 수 있어요.
모든 일에는 순서란 게 있잖아요.
전문용어로 '지소선후 즉근도의'라고 합니다. <<대학>>의 한 구절이죠.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인용 사례를 종류 별로 몇 개 들어 볼게요.  

SBS 공개홀, 요리 방송 오디션을 앞둔 어느 조리사. "퓨전 요리가 왜 생겼는지 아세요? 유명한 요리사 밑에 들어가서 기술 배우려면 보통 7년이에요. 하도 지겨우니까 독립하는 거죠. 자기가 아예 새로운 요리법을 만들어서..."

김수행,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부록] 시험문제 모음" 에서. "자본은 흡혈귀와 같다. 해설하라."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 예를 들어 설명하라."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 SBS 스페셜, 2008년 6월 15일, <윤봉길은 이렇게 총살됐다>, "윤봉길 의사의 특공작전은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10만 명의 대병력으로 1932년 중국 상해를 점령해서 완전무장한 일본 군대의 3중의 경계망을 뚫고 수행한 특공작전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건 테러가 아니라 이건 특공작전입니다."

오늘 과제는 영화 속 명대사를 한 문장으로 인용해 보는 겁니다.
한 문장으로 작성하되 그 앞에 괄호를 치고 괄호 안에 영화 제목과 영화 속 등장인물 이름을 적으세요.  

(영화 <범죄의 재구성>, 김선생이 서사장에게), “내가 청진기 대면 딱 나와. 나, 김선생이야.”

여기서 제가 백윤식 대신 김선생, 임하룡 대신 서사장이라고 썼습니다.
이거 아주 중요합니다.
영화 내용 인용할 때 등장인물 이름을 정확히 표기하는 게 좋아요.
배우 이름으로 인용한 글은 메모지, 인용이 아닙니다.  
극중 이름을 적고 그 대사가 이루어진 앞뒤 상황까지 함께 적으면 더 좋죠.  

예를 하나 더 들게요.

(영화 <여인의 향기>,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슬레이드 중령이 찰리에게)
“작은 것을 종합하면 큰 것을 알 수 있단다.”

영화 내용을 인용할 때는 극중 이름과 대사의 맥락까지 적어라! 잊지 마세요.
이런 걸 잘 해야 나중에 단행본, 정기간행물, 논문 같은 거 인용할 때도 잘 할 수 있어요.

슈퍼마켓이나 마트에 가서 계란 한 판 사죠.  
집에 와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둡니다. 하루이틀은 상관없어요.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서 계란 후라이를 해 먹으려고 하는데 좀 꺼림칙합니다.
이게 언제 산 거지? 상한 거 아닐까?
그래서 베테랑 주부들은 계란을 샀을 때 싸인펜으로 구입날짜를 적어둡니다.

인용 비법도 이와 같아요.
인용할 때 출처를 적어둬야 나중에 번거롭지 않아요.
나중에 날짜 알아보려고 마트 영수증 찾아서 계란 항목 찾아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짜증나거든요. 그냥 계란 버리고 말지...

계란을 사면 날짜를 적어 두어라! 쉽게 이해할 수 있죠?
그럼 날짜만 정확히 적어두면 되냐... 그렇습니다. 날짜 대신 회차를 적어두어도 좋습니다.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2008년 6월 11일 방영분.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97회, “이외수”편.

TV 프로그램 같은 경우를 보죠.  
우리가 평소 가장 많이 접하는 게 TV입니다. 책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죠.
저는 TV에서 글쓰기 소재, 즉 글감을 가장 많이 얻습니다.
작가라고 해서 맨날 셰익스피어 읽고 플라톤 읽는 거 아니거든요.

인용출처를 정확히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써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전문용어로 아까비... 죠.

예전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이외수 씨는 뭐라고 뭐라고 하더라...
“무릎팍도사 97회에 출연한 소설가 이외수 씨는 이렇게 말했다.”

두 문장 중에 어떤 게 힘이 더 셀까요?

그럼 잠시 지난 주 내용을 복습해 보죠. 정확하게 쓰는 습관을 들이고, 개념규정하고, 또 재규정하여, 한 줄 메모로 남겨라...

지난 주 청취자들이 올려주셨던 메모 중 몇 개를 뽑아왔어요.  

변상진 : 두 번째 주 수요일 19시18분에 삼성역7번출구 앞 선녀호프에서 맥주 각1000씩합시다.

잘 하셨습니다. 가르쳐드린 대로 그대로 하셨죠?
변상진 씨는 ‘정확히 표현하는 방법’을 평생 잊지 않으실 겁니다.
EBS 반디게시판에 직접 써 보셨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이 이해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장윤호 :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가겠다.  
 
그렇습니다. 적으신 것처럼 그게 바로 메모의 목적입니다. 어제 쓴 글보다 더 낫게 쓰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야 글이 발전합니다.

인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어요.

원문 문구를 임의로 바꾸지 마세요.
전문용어로는 이걸 '전의(傳疑)'라고 합니다. 의심나면 의심나는 대로 옮기라는 말이죠.
일단 옮겨놓고 나서 인용문 밑에 자기 의견을 덧붙이세요.

어떤 책에서 '획정'이라는 단어를 봤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거 '확정'의 오타 같거든요. 그러면 고쳐도 될까요? 안 됩니다.

획정 : 劃定 <명사> 구획을 정함.
확정 : 確定 <명사> 확실하게 정함.

인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문 그대로 옮기는 겁니다.
설사 맞춤법 틀린 게 명백해도 그냥 옮기세요. 그러면 독자들도 다 알아요.
편집하지 마세요. NG  장면 그대로 놔두세요.
  
다음 시간에는 지금까지 배운 글쓰기 쌩기초 기술을 바탕으로, 긴 글을 한 줄로 요약해 보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긴 글을 요약하는 거, 어렵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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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2-08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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