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법정 스님의 이 책을 아내에게 선물해 주었다. 아내는 책선물 받으면 며칠을 기뻐한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볼 책이나 사지, 아내에게 잘 안 사 준다. 나쁜 놈이다.  

엊저녁에 사과 요구르트를 먹고 잤더니 아침나절에 배가 요동을 쳐서 화장실에 이 책을 가지고 들어갔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뒤편의 몇 편 글을 읽었다. 시원한 배로 꿀잠을 깜박 자다가 학교엔 늦게 갔다. 고3 담임이 가장 행복한 며칠을 요즘 구가하고 있다.  

오후에 Y여고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와서 두어 시간을 공부하는 이야기로 떠들고 왔는데...
나랑 친했던 선생님 부인의 안부를 여쭈어 본다고 지나가는 말로 00 선생님 잘 계시죠? 했는데...
휴직을 하셨단다.
그저 몸이 좀 안좋으신 건가 했더니, 명퇴 신청을 해 놓으셨단다.
지난 여름에 다른 일로 그 학교에 갔을 때에만해도, 승진을 눈앞에 두고 바쁘신 것 같았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탓인지, 뇌가 굳어지는 뭐 불치병이란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많이 우울했다.
멀쩡해야 할 사람이 어느 순간, 갑자기 멀쩡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텅 빈다. 

집에 와서 다시 법정 스님의 책을 들었다.
빈 속은 빵 몇 조각으로 허기를 면해 두고, 책을 내쳐 읽었다. 

병상에서 줄곧 생각한 일인데 생로병사란 순차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자연사의 경우는 생로병사를 순차적으로 겪지만 뜻밖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차례를 거치지 않고 생에서 사로 비약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순산순간의 삶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인생을 하직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언제 어디서나 삶은 어차피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순간들을 뜻있게 살면 된다. 삶이란 순간 순간의 존재다.(
41) 

이런 구절이 마음에 콕, 와서 박힌다. 
나랑 한창 친했던 그 선배는, 아내의 병명을 듣고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학교가 재미없었던지, 명퇴 신청을 해 두고 있었다는데... 아내의 병을 듣고 철회를 했다고 하는데... 마음이 먹먹해왔다. 

당신은 이 아침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만날 그날이 그날처럼 그렁그렁 맞이하고 있다면 새날에 대한 결례가 될 것이다. 누가 됐건 한 생애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하루하루는 그 빛으로 인해 새날을 이룬다.(49) 

내가 즐겨 쓰던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법정 스님도 새겨 두셨더랬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ㅎㅎㅎ 유쾌한 남자. 

삶의 기술이란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깨어있는 관심이다.(54) 

책을 읽음도 이렇게 할 일이다.
자신의 삶을 직시할 수 있도록...
책이 나를 읽도록, 책에 읽히지 말고, 좋은 책의 내용이 내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스님의 고마운 충고는 저릿저릿하다.
그래야 문자향, 서권기... 문자의 향기와 서권의 기상이 내 안에서 움트고 자란단다. 

스님, 형수님, 두루 편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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