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를 읽으려고, 오래 전부터 도서관에 가면 찾았는데... 결국은 주문해서야 읽게 되었다. 아들 녀석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감기에 걸려서 종일 누워자는 동안 야금야금 읽었는데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은 이런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표지는 좀 조잡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바라보니... 왜 이렇게 책 표지도 사랑스럽냐? ㅎㅎ
구덩이들을 파야 하는 아이들의 손에 잡힌 물집과 굳은 살이 아릿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두 친구 스탠리와 제로, 그리고 저 손톱의 주인공인 엽기녀도 떠오른다.
도마뱀들이 스탠리를 물지 않은 이유인 그림도 귀엽고,
해바라기씨 주머니 속에 들었을 스플루시...의 시원한 향도 떠오를 법한데,
역시 맨 앞엔 구덩이의 주인공 삽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아, 그리고 구덩이들을 넘나드는 저 방울뱀의 뱃살도 사랑스럽다. 뒷표지에는 메리 루의 이름이 적힌 배에 주인공 메리 루가 타고 있으며, 번쩍거리는 케이비(국민은행이 아님) 뚜껑이 빛을 발한다. 

스탠리를 주인공으로 한 축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미국의 성장소설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사는 아이가 도둑으로 몰려 소년원 신세를 진다는 진부한 이야기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4가지가 없으며 소년원의 생활은 지옥 옆동네 비슷하다.
제로가 글자를 배우려는 노력은 재미있지만, 그저 그렇다.  

스탠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 그 구덩이를 파서 새겼다.(104) 

이런 간결한 문장으로, 한 챕터의 마무리를 확실하게 지을 줄 아는 작가. 그는 천재다.

그런데, 사랑에 실패한 한 남자가 배에 올라 세상을 바꾸면서 남긴 생각. 
이 남자의 이야기는 별것 아니지만 이야기의 새 축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마담 제로니가 죽기 전에 그 산의 개울물을 마시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못내 가슴 아팠던 것이다. (58) 

아, 친구 제로니는 스탠리의 동생이 될 뻔한 이런 플롯이란... 배배꼬여서 독자를 머리통 터지게 만드는 작가가 아니면서도, 스토리들이 겹쳐지고 만날 때의 재미란... 정말 대단한 작가를 만났다는 생각을 열두 번도 더 하면서 읽게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ㅠㅜ 

"아, 쌤, 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캐써린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자, 쌤이 말했다.
"그것도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
158) 

아, 얼마나 간결한 문맥 속에서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꾼인가. 

표지에 그려진 조각금들은 마치 이 얘기가 꾸려져가는 플롯을 따라 가는 퍼즐의 경계선같이 보인다.
간결한 문맥 속에서 오늘날의 청소년들을 책속으로 안내하는 작가의 역량은 부럽고 부럽다. 

현재와 과거가, 여기와 저기가 종횡으로 직조하는 이야기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앞에서 맞춘 퍼즐의 둥근 부분이 뒤에서 다시 꼭 들어맞는 짜릿한 경험으로 안내하는 훌륭한 작품을 읽고 칭찬을 멈출 수가 없다. 아들 녀석이 재미있다고 읽었으면 좋겠네. 

책을 재미있게 읽었으나,
음, 나의 전공인 맞춤법 문제는 하나 짚고 넘어가자.(혹시 편집자라도 읽으면 도움이 되겠쥐.)  

서두에, 이 책은 '한글 맞춤법'에 따랐다...고 했으면서, 인명과 지명 등은 현지 발음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했는데... 한글 맞춤법은 아닐지라도, 외래어 표기법이란 것이 어문 규정에 엄연히 있는데...(나는 그 어문 규정을 정말 맘에 안 들어하는 사람이지만...) 출판사에서 맘대로 표기법에 어긋나게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것도 불어권처럼 빠리를 파리로 쓰기 싫다는 정도의 이유라면 이해가 가지만, 샘을 굳이 쌤이라고 쓸 필요는 없지 않나 한다. 

56쪽 네째줄의 '뒤쳐진...'은 '뒤처진'으로 고쳐 주는 것이 좋겠다.(이 책은 인기가 많으므로 판을 거듭 찍을 것이 뻔하므로...)
뒤쳐지다...는 뒤집혀서 젖혀지다...는 뜻이고,
뒤처지다...가 어떤 수준이나 대열에 들지 못하고 뒤로 처지거나 남게 되다...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스탠리가 초보자라서 다른 아이들보다 구덩이를 못파게 되는 것은 뒤집혀지는 게 아니므로... ㅎㅎ 뒤처지다가 옳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12-28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죠.^^
내게는 작년 리뷰대회에 대어를 낚은 작품이었고...
다시 또 봐도 절묘한 퍼즐맞추기, 정말 대단하죠!
'마지막 강의'는 눈이 빨개질 정도는 아니고 끝부분만 눈물이 났어요.ㅜㅜ

글샘 2008-12-29 19:36   좋아요 0 | URL
저는 췌장암에 대한 독특한 기억이 있어서 더 마음아팠는지 몰라요.
10년 전에... 정말 마음을 다 주어도 좋겠던 친구(5년이나 선배였지만)였던 사람을... 그때 그이는 38세였습니다. ㅠㅜ 하늘로 보냈거든요.
그이가 힘들어할 때... 왜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서 같이 놀아주지 못했던지... 요즘이라면 더 갔을걸... 하는 생각 많이 했거든요.
마지막에 아내에게 말하는 부분에서 저는 혼자 집에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ㅠㅜ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죠. 같은 병이었으니... 하늘에서 만나시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