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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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자들, 또는 한문학자들, 또는 역사학자들의 글들을 읽노라면, 지들은 뭘 아는데 독자인 우린 도통 모르는 것처럼 자격지심을 느끼게 하는 글투가 은연중에 읽히곤 하는데, 강명관이란 이 사람의 글은 때론 통쾌하고, 때론 정겹다.

일본 천리대학에서 만난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로 시작해서 끝나는 이 책을 쓴 강명관은 '조선의 뒷골목 풍경'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내가 알 정도면 유명하지 않을까? ^^)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래, 그래 하면서 혼자 공감이 되어 방방 뛰었다.
구텐베르크 금속 활자의 가치는, 그 활자로 민중을 위한 성경을 찍었고 그것이 종교 개혁이란 역사적 사건으로 발전된 데 있다.
고려의 1234년 고금상정예문(도대체 그 책이 뭐하는 건지 누가 아냐? 쳇)과 1377년 직지심체요절(잘도 외운다. ㅎㅎ 이게 역사 교육의 필요성이냐? 쳇!)을 찍은 금속활자는 조선조에 와서도 왕조의 변명에만 쓰일 뿐, 역사적으로 불필요한 도구였으므로 전혀 자랑스러워할 것이 없다는 그의 논조에 나는 새벽 세 시를 넘겨 가면서 혼자서 감격하였다. 뭐, 초저녁에 낮잠을 잤으니 밤늦은 독서라도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의 글을 읽는 맛은 잠들지 못하는 데 비하면 신선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홍대용 : 중국에도 주자와 철판이 있는지요?
중국인 : 모두 목판을 쓰고, 철판과 주자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중국에는 금속활자 인쇄가 없다는 것 아닌가. 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민족의 문화를 말하는 사람이면 언필칭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를 떠들지만, 그 활자로 찍은 책이 과연 유리창과 융복사에서처럼 쌓여 팔렸던가, 아니, 책시장이란 것이 있기는 했던가.(
221)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산의 저작은 당대에는 결코 잉크 맛을 보지 못했다. 다산은 자신이 당면한 사회현실을 절절히 발언했으되, 그 발언은 저작의 형태로 유포될 수 없었던 것. 다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박제가의 북학의가 그랬고, 박지원의 열하일기 역시 그러했다. 이른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이 저 귀중한 저작들에 왜 그리 인색했던가. 한심한 일이다.(300)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글에서 가장 멋진 구절은 이황, 훌륭할 것도 별로 없다! 이런 구절(은 그가 쓰지 않았지만 ㅋ) 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퇴계보다는 그를 화폐에 안치한 국가주의가 싫다. 그 국가주의를 걷어낸다 해도 퇴계는 여전히 별로다. 퇴계가 생각했던 이상적 인간과 사회가 나의 세계관과 어긋나기 때문이다...(86) 히야... 한문학과 교수가 이런 말도 할 수 있구나...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읽은 조선문학사상사...들에는 대학원까지 나온 나도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성,리,기 등의 용어를 그럴싸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그것이 중세의 논리일 뿐, 별것 아니라는 말을 듣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당시에 주자학을 집대성한 이황의 업적은 놀라운 것이지만, 마치 퇴계의 사상이 한국 선비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처럼 떠벌이는 것에 주눅들어 버리는 나같은 무식한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말이다.

사,대부라는 말을 그저 배우고 외웠는데, 독서하면 선비 士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 大夫라는 말을 보고 재밌는 걸 배웠단 생각을 했다. 벼슬하는 게 생의 목표고, 안되면 안빈낙도라는 웃기는 말을 하던 자들이 그들이었음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하지만... 지금 학교에도 승진하지 못한 50대를 무정란이란 말로 희화화하기도 하는 걸 보면... 아직도 이 땅엔 출세지상주의 유령이 살아있는 모양이다.

간서치전에 나오는 구절... 그가 지내는 방은 아주 좁았다. 하지만 동쪽 남쪽 서쪽에 모두 창이 있어 동쪽 서쪽으로 해가 옯겨가면 햇볕이 드는 밝은 창 쪽으로 가서 책을 보았다.(233) 역시 이덕무다.

박세당, 허균, 정약용, 박지원 외에도 많은 이들의 독서 편력이 등장하지만, 역시 조선조란 왕조에 불과했던 나라였다. 정조의 개혁 정치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걸고 있던 나에게 그런 꿈을 접으란 소리를 하는 강명관의 책은 섬뜩한 면도 있다. 그래. 왕조에서 무슨 희망을 바라겠나. 그렇지만, 정조가 서울을 버렸더라면... 하는 생각은 노건평을 자꾸 건드리는 지금 정권과 노론이 오버랩되면서 이 나라의 비극을 자꾸 되씹게 만든다. 그렇지만... 정조의 문체반정은 그가 가진 한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한 오자만 해도 예닐곱 개가 된다.
그렇지만 처음 한두 개는 그냥 무심코 지나쳤기에... 나중에 표시해 둔 몇 개만 올려 둔다.
혹시 이 책이 재판 삼판 나온다면... 그럴 확률은 그닥 높지 않아 보이지만... ㅠㅜ 참고가 되도록.

14. 3문단. 철학이 두 번 들어갔다.

314. 아래서 셋째줄. 신서'과'/ 와로 수정

370. 3행의 칼라일의 '의'...

이 멋진 책에 몇 글자의 오탈자로 인하여 책의 등급이 한단계 다운된다면 아쉽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책에는 끝에 꼭 이런 맞춤법 교정기가 붙는다. ㅠ.ㅜ 강명관 선생님, 담에 책 내시면, 제가 교정 봐 드릴게요. ㅎㅎㅎ 소주나 한잔 사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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