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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어디선가 이 소설에 대한 격찬을 읽은 기억에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다.
찾아 읽었다기 보다 찾았는데 없어서 그냥 왔는데 어제 오후에 사서 샘이 내 책상 위에 살포시 얹어두고 가셨다.
고마움 마음에 출장가면서 오면서 지하철에서 읽고 아침에 잠깐 읽었다.
별로 먹을 게 없는 소설이다.
내가 바라는 먹을 거 말이다.
이 소설을 미국인들이 읽는다면 감회가 다를 수 있다.
그들은 지금 더욱 그럴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생긴 후 200년 동안, 그들은 계속 엘도라도를 찾아 총질을 하며 다녔다. 골드 러시는 총질하는 어디에서나 이루어졌다.
그 미국의 월가가 무너져버렸다.
9.11에 이은 폭탄이었을 것이다.
삶의 방향을 잃고, 정말 대재앙이라도 만난 듯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완전히 타버린 지구상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간들의 비루한 투쟁을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의 묵시록적 상상력의 연장선상에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사이비 목회자들의 기독교가 득세한 이 땅에서 로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미국 소설이어서, 그리고 교회 관련 소설이어서일까?
엘리라는 선지자를 만나는 대목도 작위적이긴 마찬가지다.
- 길에 나선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 늘 길에 있었소. 한군데 머물 수가 없거든.
-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 그냥 사는 거지 뭐. 나는 이런 일이 올 줄 알았소.
- 올 줄 알았다고요?
- 그렇소. 이런 일이나 이와 비슷한 일이. 늘 그럴 거라고 믿었지.
- 그래서 준비를 좀 하셨습니까?
- 아니. 무슨 준비를 하겠소?
- 모르겠습니다.
- 사람들은 늘 내일을 준비했지. 하지만 난 그런 건 안 믿었소. 내일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어.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
- 그런 것 같군요.
- 설사 당신이 뭘 해야 할지 안다 해도 막상 닥치면 어째야 할지 모를 거요. 그렇게 하고 싶은지 아닌지 알지 못할 거란 말이오. 당신이 맨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시오. 당신 자신에게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보시오.
- 나는 그저 당신처럼 길에 나선 사람일 뿐이오. 다를 게 없소.
- 성함이 정말로 엘리인가요?
- 아니오.
-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으시군요.
- 말하고 싶지 않소.
- 왜죠?
- 당신을 믿고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할까봐.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싫소. 내가 어디 있었다거나 내가 어디 있을 때 뭐라고 말했다거나. 그러니까 당신이 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거요. 하지만 아무도 그게 나였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나는 누구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때에는 말을 적게 할수록 더 좋은 거요.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우리가 살아남아 길에서 만난 거라면 우리는 할 말이 있을 거요. 하지만 우린 살아 남은 게 아니오. 그러니까 우린 할 말이 없소.
- 그런지도 모르죠
인간은 준비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존재다.
누군가는 미래를 대비한다고 보험을 들고,
누군가는 투자 또는 투기를 한다.(자기가 하면 투자고 남이 하면 투기다.)
헛되고 헛된 짓인 것을...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내가 누구인지, 그 답은 없고, 여기 숨쉬는 한몸이 지금 있을 뿐이다.
우린 살아남은 게 아니오. 그러니까 우린 할 말이 없소...
이런 말은 소설 속에서 서걱거리며 융화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낱말들이다.
미국인의 심리적 불안감을 그린 소설이 한국에서 잘 팔린다.
역시 바나나들 - 겉 노랗고 속 하얀 -의 동일시일까?
정말 이 소설이 훌륭한 작품일까?
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