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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다리는 피트니스 클럽이나 에스테닉 숍에서만 쓰는 신체기관이고, 발은 '지미추'나 '마놀로 블라닉'을 신을 때만 쓰고 싶은 연봉 3천만원짜리들.(80)
나는 종종 패션계 사람들의 속이 공갈빵 같다고 생각한다. 예금 통장, 펀드, 하다못해 보엄 하나 없으면서 그들은 일단 일부터 저지르고 본다.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우리나라 보험 회사들은 전부 다 망할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인생이란 언제 끝장날지 모르는 부도 수표에 가깝다.(81)
인생엔 신문에서처럼 '바로잡습니다' 코너가 존재하지 않는다.(146)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비겁함이다. 살아 있음을 증명받기 위해, 비극에 기대는 안간힘, 이것이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는 서울이라는 허술한 도시에서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비애다.(166)
부엌의 로망이라는 게 있다. ... 여자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부엌을 갖는 일에 대해 상상한다. 역설적이게도 요리를 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아름다운 부엌에 대한 욕망은 더 강해진다. ... 부엌은 분명 여자들의 판타지 공간이다. ... 직장 여성들의 부엌이란 기능적인 것과는 별개의 곳이다. ... 화려한 장식용 그릇같이 쓰기 위한 것이 아닌 관상용! 부엌에서 쓰는 물건들의 용도 변경에 관한 예는 무수히 많다. 도시 여자들에게 냉장고는 그야말로 시체 보관소에 가깝다. ...(227)
억을 받는다는 세계 문학상에서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었던 것이 호감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억, 치고는 이 작품을 읽고 별 느낌이 없다. 아니, 억, 은 아니다...싶다.
재기발랄하지만, '연봉 3천만 원짜리들' 주제에, 자신의 삶이 '명품'과 가까이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현대의 한국 젊은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해 주는 소설이 아닐까 한다.
문학 작품은 당대를 반영한다.
20세기를 지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먹고 살만 해 졌다.
특히나 배가 몹시 고팠던 기성 세대는 신세대들에게 '화초처럼 풍부한 비료의 세상'을 제공해 주었다. 먹고 싶은 것은 먹게 해 주었고, 세상이 쓰라린 것을 보여주기 싫어했다. 아버지의 등이 허전한 것임을, 어머니의 지갑은 늘 텅 빈 것임을... 신세대는 보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토대가 비록 민중의 그것일지언정, 그들의 의식은 가진자들의 것과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과 친근함, 인정, 친절함으로 이뤄지는 사회에서 동떨어진,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도시인의 삶이 그들에게 더 자유로운 것인지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플롯을 바라보면, 신선함보다는 식상함에 가깝다.
재기발랄함에 기댄 '서사'는 내 기준에선 서술자가 너무도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어, 참지 못하고 토로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백영옥이 세상을 좀더 '현상'에 매몰된 탈개성화된 캐릭터에 머물지 않고, '진실'을 반영하는 '개성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의 형상화에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