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의 리뷰어로 당첨이 되어서 공짜로 책을 받은 것이 두어 달 된 듯 싶다.
그동안 온 나라가 삽시간에 폐허가 되어버렸고, 그 폐허의 구덩이 곳곳에서 정체불상의 생명체가 독자를 위협하고 있다.

예전부터 나는 '식물', 특히 '덩굴 식물'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만일에 숲 속에 나 혼자 남겨졌는데, 식물이 내게 위해를 가한다면...
식물도 지능을 가지고 나를 툭툭 건드린다면, 나란 존재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반가웠던 반면,
그의 소설이 지나치게 '두 시간 짜리 영화'같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오히려, 소설을 읽으면서 만나게 되는 '상징성'에 나는 침몰해 갔다.
바로 '폐허가 주는 공포'와 '공포 정치가 만들어 간 폐허'에 대한 생각이다.

폐허에서 만난 공포의 생명체는 주인공들을 '문명화된 인간'에서 '공포로 추락하는 나약한 존재'로 규정지어버린다.
이유도 알 수 없이 원주민들은 주인공들을 특정 공간에 가두어 둔다.
폐허에 살고있는 정체 불명의 생명체...
그것에게 주인공들을 바치고는, 주인공들의 탈출을 그래서 방해하는 것인 모양이다.
폐허의 덩굴과 원주민들은 모종의 계약을 맺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들을 상납하는 대신,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받았으리라.

이 책을 야금야금 읽어나가는 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은... 지나온 역사의 표피들이 너덜너덜 벗겨져 버린 채, 근육과 뼈대들이 앙상하게 되살아나는 폐허화에 다름아니었다.
어렵게 이룩해왔던 민주화의 허상들을 단숨에 무너뜨려 버리고,
국민을 '지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괴물과도 같은 정부'는 나라 구석구석을 폐허로 만들고 있다.
뉴라이트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단체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고 방식으로 정부의 편을 들고 있다.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폭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음주 상태에서 시위대를 들이받기도 한다. 그리고 떡하니 풀려난다.

촛불든 시민은 폐허 속에 뛰어들어 괴생명체와 싸우게 된다.
그런데 그 괴생명체는 상당한 지능도 가지고 있고, 원주민과도 같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음이 슬금슬금 드러난다. 처음엔 거짓말로 '미친소 수입 반대'를 구렁이 담 넘기듯 미끈덩거리더니, 이젠 대 놓고 공격을 하기도 한다. 백골단의 부활이라니...
괴생명체의 지능은 무기력한 시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말 것인지...

이 소설의 끝은 다소 허무하지만,
이 땅의 폐허에서 벌어지는 공포정치와의 한판 대결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이 땅의 주인공들은 괴물의 생명력보다 더 끈질긴, 민중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폐허를 읽으면서... 난 왜 이런 도그마에 갇혀서 살고 있는 건지, 이 소설을 왜 이런 식으로 읽고 있는건지... 스스로 많이 물어 보았다.

그건, 이 땅이 명백한 폐허이고, 그 폐허에서 오늘도 내일도 살육의 현장이 반복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게 되었다. 다소 늦어버린 리뷰지만... 폐허에서 '공포 정치'를 마주 보면서 '이건 소설이야' 하는 안심법을 터득하듯이,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는 정신적 승리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중국의 아큐가 얻어맞으면서도 '정신적 승리법'에 불과한 만족감을 얻는 상황을 루쉰이 비꼬는 소설을 썼다면, 다시 1세기가 지난 오늘날 루쉰이 아큐 정전을 새로이 쓸는지도 모르겠다. 아큐의 정신적 승리법은 '바보의 착각'에 머무른 것이 아닌, '중국의 자존심'이었다고 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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