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노자를 만나다 - 무(無)의 쓰임새와 비움의 영성
이명권 지음 / 코나투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노자는 깊다. 노자는 얇지만, 역설로 만들어진 노자의 깊이는 독자의 깊이보다 훨씬 깊다.
독자가 얕게 읽으면 별것 아니지만, 독자가 진지하게 노자를 들여다보는 순간 노자의 깊이는 끝이 없다.

이 책의 제목을 읽고는, 옳다꾸나, 성경 말씀과 노자가 얽혀있는 좋은 책이겠구나... 하는 마음에 사두긴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성경 말씀보다는 노자 풀이를 종교적으로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관에 치우친 느낌이 강하다.

장일순 님의 글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노자의 깊이가 어우러져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 그렇게 치면, 이아무개와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는 얼마나 즐거운 독서를 제공하는 책이었던지... 도서관을 다시 뒤져봐야겠다.

10장의 장이부재에서 '섬기는 정신이야말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현묘한 덕성을 지닌 자가 아닌가'하는 이야길 읽다. 쥐박이가 말로만 섬기는 바가 바로 그의 단점이다.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쥐도 웃을 일이다.

진공묘유, 즉 텅 빈 것이 묘하게 있는 것이 삶인데, 그 역시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복귀기근(114) 엘리엘리 라마 사박 다니(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삶은 흙으로 만든 그릇이 흙으로 돌아가듯, 우리가 온 그곳으로 가기 위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일이 완수되면, 백성은 우리가 한 것이다... 고 한단다. 민주 국가일수록 지도자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고 한다. (122) 아,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도탄에 빠지니 젊은이들이 애인보다 명박이 이름을 더 많이 부른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를 한다. 격앙가의 한 도막,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휴식한다.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황제인들 내게 어떡하겠는가... 디오게네스가 떠오른다. 내게 어찌하겠는가... 그림자 진다. 비켜 달라.

로마서 말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사망의 길을 갈 것인가, 생명과 평안의 길을 갈 것인가.
이는 경조 輕躁 (가볍고 조급한 길)냐, 중정 重靜 (무겁고 고요한 길)이냐에 달려있다.
가벼우면 죽을 것이요, 무거우면 생명과 평안이 도래할 것이다.(183)

216쪽에 부도조이 란 말이 등장한다. 不道早已 도가 아닌 것은 일찍 끝난다.
제발, 도가 아닌 세력을 일찍 끌어내렸으면 좋겠다. 강고하게 버티려고 하겠지만...

저자인 이명권씨가 좀더 깊이있는 책을 내 주길 기대한다.
새삼 이 아무개 선생의 대담을 대단하게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노자를 읽는 일은,
쓸모없는 쓸모를 생각하는 일이고, 쓸데없이 초조해하는 나의 마음을 고요한 중정의 삶의 길로 이끄는 일이다. 쓸모만 따져서는, 또는 그 쓸모를 내 기준에만 맞춰서는... 삶이 고요할 수 없다. 북새통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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