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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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아주 체념적이다. 네가 누구든, 또 얼마나 외롭든, 나는 관여치 않겠다. 뭐, 이런 듯한. 또 하느님도 별로 관심 없다는 듯...

얼마나 외로웠으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괴로워했으면, 이런 제목을 붙였으려나.

80년대의 치열한 운동의 맥락은 6.29의 허상에 묻혀버리고 90년대 반민자당 투쟁의 맥락에서 분신정국으로 파국을 맞고 말았다. 죽음의 굿판!이란 마녀사냥 앞에선 이들의 정체성 속에는 루카치의 <별>이 없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 슬픈 영혼이라는 막막함이 깃들였으리라. 그 시대에 학생운동을 한답시고 움직였던 이들에겐, 세상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리라. 소련이란 큰 별이 떨어지고, 시답잖은 주사파 철학에 청춘을 걸기엔 참, 인생이 외롭고 스산했으리라.

요즘, 촛불을 들었던 여중고생들이 시험치러 들어간 동안, 집회에는 주로 386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루카치가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는 말을 곱씹으면서, 문드러진 자본이 판치고 있는 추잡한 사회에서 외로운 영혼을 감싸고 얼마나 각자 떨고 있었던가, 그들의 더운 등짝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384)일 뿐이다.
삶이 외로운 것은 매일을 외롭게 살아서가 아니라, 그 기억이 너무도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촛불을 들고 우는 아저씨 아줌마들은 차라리 그 치열했던 80년대의 독재정권을 그리워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촛불이 횃불로 불타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둠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374)

386들이 가득한 시위대를 바라보면서, 그간 내가 잘못 생각했고, 김연수가 옳음을 생각했다.
그래, 루카치가 말한 것처럼 별빛이 없어서 외로웠더라도, 우리에겐 '단 한 번 뿐이었을는지 몰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매일 숙제를 하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촛불을 들고, 새벽에야 들어가서 다시 아프리카를 켜고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순간에, 그들은 이미 다른 존재가 되었으므로...

역사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더 매력적인 것은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298, 네루) 요즘 역사를 읽지 않지만, 조금 달떠서 살고 있다. 역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후일담이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의 라운지 스토리이기도 한데,
모든 것이 끝나도, 내겐 아직 죽을 힘이 남아있다.(로미오와 줄리엣 3막 5장)
우리는 가끔씩 우리의 바깥에 존재한다.(392)

삶이란 것이 어차피 정답은 없는 것이지만, 자기 선 자리에서 주인이 되기도 하고, 내 밖에서 나를 쓸쓸히 쳐다보는 나, 또는 우리라는 집단 무의식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래도 우리에겐 아직 죽을 힘이 남았음을 생각하는... 이런 생활이 활력이기도 하다.

어제 미사를 드리면서 두 시간을 울었다. 회개할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미사 모두에서 신부님이 "여러분 많이 외로우셨죠? 오늘 시국 미사는 우리가 국민 여러분을 위로해 드리려고 나왔습니다."하시는데 정말 마음 속에서 굵은 눈물이 시원하게 흘러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에 계신 분들은 마이크 시설아 좋지 않아 별로 감동을 못받으신 것 같았다. ^^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나는 담담하게 듣는 이 소설도, 누군가에겐 엄청난 위로가 되고 그 외로움에 사무쳤던 날들을 떠올리며 밤새 눈물을 쏟게 할는지도 모를 일이며... 

워낙 오랜만에 쓰는 리뷰라, 앞의 리뷰를 찾아보니 5월 28일것이 마지막이다.
5월 마지막 날 밤, 물대포의 만행을 보며 밤새 운 이후론 책을 못 읽었는데,
어제 신부님들의 위로 덕택에 책이 눈에 조금 들어온다.
이제 곧 방학이다. 아이들 자습하는 동안 책좀 읽고 싶다.
감독 없는 날엔 촛불도 부지런히 밝힐 것은 당근이고...

이런 말을 읽으면서 게을러질 순 없는 노릇이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단테)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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