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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양귀자 지음 / 살림 / 199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창에도 뚫리지 않는 방패가 있다면, 그 방패를 뚫는 창과 함께 존재할 수 없다.
살다보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잘도 뚫리는데, 어떤 인생은 저렇게도 뚫리지 않는 방패같을까...하고 남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또 살다보면... 그 뚫리지 않을 것 같은 방패도 뻥뻥 뚫릴 때가 있고, 내 허술한 방패도 뚫지 못하는 창도 있는 법인 모양이다.
삶의 길은 두 갈래 길을 모두 갈 수 없다.
그래서, 늘 가지 못한 길을 돌아보면서 망양지탄에 빠지게 된다.
그때 그 직업을, 그 사람을, 그 선택을 잡았더라면... 나의 현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하는.
그렇지만, 삶은 또한 새옹지마 그대로다.
호사다마고 전화위복인 것이 삶의 역설이고, 그걸 양귀자는 모순이라고 부른 모양이다.
변방 노인네의 말을 잃어버린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듯,
그 말이 암말을 하나 이끌고 돌아온 일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결국 쌍둥이 자매로 태어난 엄마와 이모의 삶에서, 원수같은 인간과 평생을 보내는 엄마의 비극적인 삶이 평범하고 심심한 이모부와 만나서 평범을 넘어서 넉넉하게 살던 이모의 삶과 비교 대상이 될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 이 소설의 콘셉트다.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항쟁 28주년 기념일이다.
명박이가 망월동 묘역에 가서 기념사만 냅다 싸지르고는 열사들의 무덤도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내뺀 모양이다. 경찰들이 칭칭 둘러싼 쥐구멍으로 말이다.
ㅎㅎㅎ 명박아,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너무 걱정 말거라.
뭐, 안진진이라면 그런 말 한 마디쯤 해 주고 싶지 않으려나?
이 책이 나온 지 10년 되었으니, 안진진은 올해로 결혼 10년차일 것이다.
안진진 여사에게 물어보고 싶다. 김장우를 버린 선택도 결국 모순이었냐고...
가지 못한 길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돌아보며 스스로를 쥐어박았냐고...
그런 모순투성이 인생을 보며,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정신도 놓아버린 꼬락서니와 교도소에 처박힌 아들을 평생 건사하는 어머니의 인생은 또 얼마나 모순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를...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이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85)
이런 말을 들은 안진진... 푸르른 일몰의 시간, 사방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올라가고 있는 그 시간, 우리들은 아버지의 자식들이었고 그랬으므로 푸르른 일몰의 시간은 숙명적인 우리의 아킬레스건이었다(140)... 피는 물보다 진한 모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 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171)
아, 불행은 늘 상대적이고, 내 마음 속에 뿔나서 선 마음에 기인한 것인가.
그것이 삶의 모순이자, 삶의 참 모습인 모양인가.
양귀자의 소설 중, 개똥 철학이 제법 많이 들어간 줄줄 읽히는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