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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인간 - 오에 겐자부로 만년의 사색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고즈윈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읽는 일은 격정적인 파고를 느끼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다. 격렬하게 부서지는 파도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배 한켠에서 고요하게 젓대라도 불고 있는 듯한, 우키요에의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세상은 험난하고, 추악한 일로 가득하다.
오에 겐자부로가 다루는 이야기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팔레스타인부터 일본의 전쟁에 대한 적극성이나 국가주의를 향한 교육기본법 같은 것들, 그리고 아들 히카리에 대한 것까지 평탄하지 않은 세상의 울렁거림이 느껴지는 일들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접하는 오에의 말투는 결코 격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것이 나이에서 우러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원 제목은 '츠타에루 고토바' 플러스...이다. '전하는 말' 플러스란 이야긴데, 츠타에루 고토바는 아사히신문에 실었던 글들이고 플러스는 여기저기서 한 강연을 실은 것이다. 이런 것을 '회복하는 인간'이란 제목으로 '오에 겐자부로 만년의 사색'이란 부제를 붙여 파는 것은 얄팍한 사기란 생각도 든다. 왜 '오에 겐자부로 칼럼 모음' 이렇게 솔직할 수 없는 것인지... 하긴 그랬다면 나도 안 샀을는지 모르지.
그렇지만 그의 '일래버레이션'이란 글을 읽은 것만으로도 돈 만원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콘서트에서 일생을 통하여 '연마된' 성과를 '일래버레이션'이란 말로 집약했는데... 음악의 나무가 여전히 성장을 계속하면서 무성한 잎들을 피워낸다는 애정어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히카리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에 대한 애착일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지식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하는 그에게 스승님이 남긴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 지루하지. 어떤 작가, 시인, 사상가를 정해 놓고 그 사람의 책, 그리고 그 사람에 관한 연구서를 3년 동안 계속해서 읽도록, 자네는 소설가가 될 것이니 전문 연구자게 될 필요는 없네... 그러니가 4년째엔 새로운 테마를 향해 나가도록 하게..." 이런 소리를 듣고, 제자는 바로 실천에 옮기는데... 올 4월부터 열 다섯 번째 3년째에 들어갑니다... 아, 얼마나 사랑스런 제자인가. 보통 작심 3일이라고들 하는데... 3년에 걸친 독서를 열 다섯번이나 새로 시작하는 뚝심이라니... 이렇게 하고서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나도 3년에 걸쳐 새로 시작하는 집중 독서라면 생각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플러스' 부분에선 아들 히카리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공감하는 이야기들을 열고 있는데... 젊은 여성 카운슬러가 상처입은 어린이들의 '내러티브'에 관심을 쏟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커뮤니케이션이 텔레비전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시대에 아이들의 내러티브의 방향이 누군가에게 밖으로 향하는 것일 때, 외과 수술에서 오는 스트레스(침습)이 불러온 발육이나 정신적 지체 상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인데... 자기 아이가 고통을 겪어온 이인 만큼 더욱 예민하겠지만, 일반인이지만 교육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아이들로 가득한 현실을 만나는 교사들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볼만한 주제라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칼럼집'을 엮어서 파는 일을 싫어한다.
칼럼이란 것이 일반론보다는 시의적절한 이야기들에 비중을 두기때문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철학을 단편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별을 하나 떼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건강한 생각과, 세상에 대한 애정들은 충분히 읽을 만한 것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