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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뜬한 잠 ㅣ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평점 :
가뜬한 잠.
어느날 문득, 주문하지 않은 책이 도착하여 들뜬 마음으로 열어본 책.
고마운 이의 선물이었다.
박성우는 거미에서 이미 나이에 비하면 걸쭉한 관조를 느끼게해준 작가였다.
가뜬한 잠... 이란 시 제목을 보면서 상상한다.
91년 현충일.
여든이 훌쩍 넘으셨던 할머니의 부음을 듣던 날.
아침 나절에 과수원에서 떨어진 과일도 몇 개 주워 오셨다던데,
점심 주무시고, 빨래도 가지런히 개켜 두시고는,
주무시듯 영면하셨다고 했다.
할머니 운구를 가리운 작은 방 병풍 위에 제법 큰 나비 한 마리 만 하루 반을 지키고 있더라.
'가뜬한'에서 가벼우면서도 거뜬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한잠 자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힘을 거뜬하게 되찾을 수 있는 단잠.
두번 째 시집에서 두런거리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 동네 담뱃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거나,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던 투의 주절거림과 조금 퇴색한 사진의 추억들이 가득 담겨있다.
그 사진들에 담긴 피사체들은 찡그렸거나 한편 구질구질하기도 하지만,
그 오랜 시간 저편에서...
역설적으로 가난과 함께 있던 '다사롭던 기억들'을 그는 잊지 않고 감광해낸다.
암실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인화지의 피사체처럼,
가만히 생각하면 한 잠 자고 일어나던 가뜬하던 꿈결같은 시간이 떠오르는데,
다 읽고난 이제는
그 모두가 사라져버린 백일몽이 아닌가 싶은 헛헛함을 끝내 이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