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미래 -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 사람들 이야기
김순천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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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은 온통 돈, 돈 뿐이다.

아이들의 고사리 손이 백일상에서 제일 먼저 집기를 원하는 것도 돈이요, 아니 그 백일상을 차리는 일조차도 어머니나 할머니의 발품이 필요없는 돈치레다.
제 손으로 과자를 사 먹을 수 있는 너댓 살 이후로, 돈돈돈의 노예가 되어 학교를 다니고 경쟁을 하고 시험들을 치고 좌절 속에 파묻히는 모양이다.

많이 가진자들이야 원래 고통이란 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땅의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질시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는 외로움에 분편화되어 덜덜 떨고 있고,
세계화를 부르짖은 이후로 점점 추락하고있는 인간의 존엄성은 절대 빈곤층의 두께를 무한정 두껍게 만들고 있다.

부서진 미래를 도서관에 사두고 몇 달이 가도록 두려워서 빌려보지 못했다가 이제서야 읽어 본다.

내 옆에도 여러 명의 기간제 교사들이 있다. 우리 정규직 교사들이 즐겁게 맞이하는 방학이 그들에게는 차가운 해직의 기간이 되기도 하고, 산후 조리를 하고 방학을 연달아 누릴 수 있는 산모들때문에 그들은 토막난 근무를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정규직의 잘못은 아니다. 그렇지만 양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처럼 드러난다.

한국에서 가장 유망한 사업은 '불법 파견 사업'이다. 생산직에서 불법 계약도 대기업을 끼고 있으면 전혀 법의 효력이 없다. 한국 재벌의 가장 큰 문제가 그것이다. 법을 뛰어넘는다는 것.

그런 지경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이 사각지대에 있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불법 인간을 다루는 부서는 '외무부'가 아닌 '법무부'인 실정이니 이주 노동자들은 존재 자체가 불법이란 생각을 출입국은 갖고 있는 모양이다.

가정복지 도우미, 대규모 병원의 간병인, 노숙인, 건축설계노동자, 영화 스태프와 방송작가, 취업준비생과 알바생, 서울대 경비 아저씨, 파견회사 사장, 노동자들, 현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와 기간제 교사, 미증록 이주노동자와 농촌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한판 걸판진 대동굿을 바라보거나 예전 유행하던 마당극을 구경하던 느낌이 강하다.

20여년 전 <목동 아줌마>들의 목소리로 대변되던 난쟁이들의 슬픈 목소리가 고층빌딩 즐비한 21세기에도 더욱 쟁쟁하게 울린다.

30년 전엔 전태일도 있었고, 김지하도 있었고, 박노해도 있었다.
전태일, 김지하, 박노해는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의 작은 음성에도 거대한 울림을 증폭시켜 들을 수 있는 가난한 마음들이 세상에 가득했던 것 같다.

그러나... 21세기 지금엔, 모두들 마음이 너무도 잘났고, 너무도 부자가 되어버렸다.
일요일이면 자동차를 몰고 가족들과 기름진 고기를 구워대러 이리저리 달리느라 작은 소리들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천성산 도롱뇽이나 태안 앞바다의 물고기들의 비명을 듣기엔 우리 귀게 너무 퇴화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시점, BBK 치킨집 사기사건도, 별셋 공장도 모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파묻히는 불안한 고요가 이룩되는데...

무서운 미래를 예고하는 이 붉은 책의 힘은 나를 강하게 일깨운다.

내가 오늘 싸우지 않으면, 내 아들이 내일 울 것임을 잊지 말고,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좀더 다잡아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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