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의 여행 바이러스 - 떠난 그곳에서 시간을 놓다
박혜영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어제 수능 감독을 종일 했다. 아직도 다리가 뻐근하고 관절이 시큰거린다. 꾀를 부려서 수시로 앉고 걸치고 했거늘... 살이 너무 쪘거나... 기계가 낡았거나다.

어제 우리 학교에서 응시한 아이들은 수능이 진학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실업계 아이들... 이미 진학이 결정되었거나, 최소한의 기준만 통과하면 되는... 그런, 그래서 수학 시간엔 코를 골며 자기도 하고, 영어 듣기 좀 전에 후다닥 담배냄새 풍기며 뛰어들어오기도 하는...

감독을 한답시고 앞에서 눈에 힘을 주고 아이들을 둘러 보지만, 아이들은 시큰둥하다.
도무지 욕망도 없고, 열기도 없다.
내 머릿속은 틈틈이 아이보리 커튼을 환하게 비추는 햇살 너머를 꿈꾸곤 했다.
그곳은 푸른 보리가 우쭐거리는 광야이기도 했고, 따가운 햇살에 다리가 까매지는 사막이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이 책에선 사진을 아주 많이 실은 것에 비하면, 사진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다. 사진의 크기도 작아서 그럴 듯.

배낭족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 어디든 훌쩍 떠날 마음만 먹으면 날아가는 사람들...
이런 종족이 90년대 이후에 생겨났다. 나폴레옹의 사전이 부실해서 '불가능'이 없었듯, 우리 세대의 사전에 '배낭 여행'이란 말은 가난하고 닫힌 사회여서 없었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기도 하다. 워낙 시간과 돈이 없으니 시속 100킬로로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음주가무를 모두 소화한 사람들이니 혼자서, 돈 써대며, 몇 달 내지 몇 년을 여기저기 시간을 놓아버리고 다니는 일은 꿈도꾸지 못할 노릇이었지.

여행기를 읽노라면, 외국의 '축제'가 너무도 부럽다. 한국은 축제가 없다. 월드컵이 축제였다고? 하긴 조금 미치긴 했지만... 그건 좀 광기에 가까웠고... 한국의 무슨무슨 축제는 지자체들이 돈 벌어 보려고 벌이는 거지만, 축제라면 즐거워야할 '여흥'과 '풍류'가 없다. 거긴 오로지 '돈'만 있다. 돈에 벌개진 눈알만 있지, 시골 장터같던 푸근한 인정은 거기 없다. 예술의 거리, 축제의 거리... 내 손자의 손자가 노인이 될 무렵이면... 여기도 그런 것들이 생기고, 누릴 수 있는 나라가 되겠지? 된다고 해도... 또 어딘가의 아이들은 가난해서 축제란 말을 누리지 못할 것이기도 하지만...



터키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를 말한 구절이 맘에 든다.

터키 사람한테는 딱 세가지 날만 있단다. 태어난 날, 사는 날, 죽는 날. 그래서 슬퍼할 시간도 걱정할 시간도 없다는 거야. 그래서 웃는 다고. 인생은 너무 짧으니까. 게다가 인생은 단 한 번. 그걸 알기에 행복하다는... 그래. 떠날 수 있어야겠다.

가난해도 집에 돌아갈 때, 헌화할 꽃 한 송이 살 줄 아는 사람들의 넉넉함.
자동차를 몰고 70킬로 속도로 집에 가는 나는 그 넉넉함이 없다. 꽃 바칠 제단도 없고...
부유함은 넉넉함과 전혀 그 질이 다른 것이다.

144쪽의 해먹에서 잠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하~ 평화는 거기에...

난 도서관 갈 때마다 자전거를 이용하곤 하는데(20분 가량), 이놈의 도시는 도대체 자전거 탈 환경이 되어있지 않다. 공기도 나쁘지만, 인도라는 곳에는 곳곳에 적재한 화물이며, 주차한 자동차, 무슨 전봇대가 그리도 많으며, 보도블럭은 왜그리도 울퉁불퉁 비스듬한 넘들 투성인지...

자전거를 타는 가난한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나처럼 자가용을 몰고 싶겠지만, 나는 자전거로 출근하는 시골 선생님을 꿈꾼다. 나는 꼭 가고 싶다. 시골 선생님이 되어... 자전거를 타는...

주름 투성이인 사람들, 카메라보고 브이도 못 그리는 쑥스럽고 서먹한 사람들의 사진이 그토록 '자연스러운' 것은 그이들의 삶이 이악스럽게 표독하고 빡빡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런던의 채링크로스 이야기를 읽다 보니 '채링크로스 84번지'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혼자서 달빛 가득 비치는 방에 앉아본 기억을 떠올린다.
물소리 소란스레 흘러내리고, 하늘 가득 달빛은 쏟아붓듯 밝았는데, 이 세상의 사람들에 제 그릇만큼 그 달빛을 담고 있었다. 내 그릇이 깨어진 쪽박이나 아니었길 바랐던 거억이...

다시 달빛 밟는 여행길을 조만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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