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누고 가는 새
임길택 지음 / 실천문학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피* 값

가시에 손 찔려가며
몇 날 걸려 지피를 땄다.
열닷 되 모으는 동안
잎 가리느라 시간을 더 많이 썼다.

칠팔만 원은 받을 수 있으려니
속셈을 하고 또 하며
장날 기다려 읍으로 나가니
한 되에 삼천 원.

'돈이 적구나' 생각하다가는
누가 읽었을까 부끄러워
얼른 그 마음 숨겨 버렸다.

이런 순진한 삶이 있나... 싶다가, 그 속된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 아는 그 고운 눈길이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 한다.

가난한 스님과 벗삼아 살면서, 새, 꿩, 고추벌레, 무당벌레, 왕거미와 풍뎅이, 까치 한 쌍... 이런 목숨 붙은 것들과 자신을 같게 보고...

불쏘시개 솔잎 한 줌, 엉겅퀴, 쑥부쟁이와 구절초, 달맞이꽃, 분꽃, 옥수수, 억새, 철쭉, 할미꽃, 키다리 접시꽃 다 지고 난 빈 꽃대까지도 같이 살아가는 가난한 시인.

1. 없는 대로
2. 불편한 대로

이런 걸 부엌에 걸어두는 스님 마음과, 그걸 읽는 가난한 시인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

쩡--- 하고 시린 쇳소리라도 울리지 않았으려나?

맨 앞에 시인이 바램이라고 적은 육필이 동글동글 마음만 살찌운다.
고마운 글... 고마워서 읽다가 눈물이 나는 글...

바램 하나.
내 잣대로 이제는 그 무엇이라도 재지 않을 수 있기를.
사람뿐 아니라 조그만 버레 하나까지도.
이제야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의 눈금이 얼마나 불확실한가를 알 수 있겠다.

햇살은 곧게 나아가다가 막히면 그림자를 만들어 놓는다.
물은 흘러가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걸 다 채운 뒤에야 반드시 다음으로 흘러간다.
빛과 물이 가졌던 이 잣대는 세상이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또 내일 그 어느날까지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이루고 있는 모습은 바로 내일의 모습을 터이니까.
그러나 나는 똑같은 사람을 앞에 두고서도, 서로 다른 잣대를 수도 없이 갖다 대곤 했다. 필요없는 사람이라 했다가 나에게 조금 이익이 있다 싶으면 또 다른 자로 '필요있다'하고.
이제 이런 내 잣대만 지워진다면 내일이나 아니 바로 오늘 죽는다 해도 기쁘게 그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다.
나는 내가 이제껏 가지고 있던 잣대를 부수는 일을 해나가겠다.
그래서 내 잣대를 결코 갖질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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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는 경상도 지방에서 향신료로 많이 쓰는데, '제피'라고도 하고, 지방에 따라 '산초'라고도 한다. 매캐한 가루를 후추처럼 찌개에 섞어 쓰는데, 추어탕, 보신탕 등에 넣는 식물의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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