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용후기 - J. 스콧 버거슨의
스콧 버거슨 지음, 안종설 옮김 / 갤리온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J. 스콧 버거슨은 박노자처럼 한국통은 아니다.
그는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세계인'인데 한국에 상당한 애정을 가졌던 사람인 듯 하다.

'한국'에 대한 다른 '비판서' 내지 '찬양서'들이 제법 점잖은 '문어체'로 '자칭 전문가'들에 의해 서술된 반면, 이 책은 스스로 '미친놈'이 '미친 나라'를 줘 까는 '구어체' 글들을 긁어 모은 것들이다.

그래서 별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에서 읽은 이야기 중 하나.
실험자가 정신병원에 갔다. '쿵'소리가 들린다고 했더니 8명인가가 모두 성공적으로(?) 맨정신으로 정신병원 입원에 성공했고, 입원한 후에는 정상적인 행동을 계속 했건만 그들은 대부분 '정신 분열증'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정신병원 안의 '미친놈들'(환자들)은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 당신은 이 병원에 뭘 조사하러 왔지?'하고 정상인을 알아보더란 거다.

태어나서 대통령이라곤 박정희밖에 없는 줄 알고 20년을 살았던 세대가 지금의 386세대다.
아직 자급자족이 되지 않던 가난한 나라에서 살았고, 오일 쇼크를 겪었으며,
빨갱이 혐오증과 도덕적 재무장으로 '컴플렉스' 덩어리가 된 세대가 그들이고,
복지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오로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하는 게 '삶'인 줄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빨갱이', '전라도' 같이 '소수자'가 되는 것이었다.
사법 살인도 서슴지 않던 미친 나라. 이 미친 나라에 사는 이들은 스스로가 맨정신이라고... 이 나라는 아주 발전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나라에 어떤 한 또라이가 들어와서 말한다. "니네, 다 미친 거 아냐?"하고...
그 방식은 박노자처럼 점잖지도 않고, 죽을 각오로 쓴 비판서처럼 전문가연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사랑하는 것은 '평화'와 '전통'과 '아름다움'인데,
이 미친 나라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돈>이다.
돈 앞에선 평화도 전통도 아름다움도 모두 '상품'으로서의 가치밖에 없으며,
인간도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 니 옆에 있는 그 애보다 더!'의 '인적 자원'의 가치밖에 없다.
인간 자체로 '가치'는 없고, 오로지 '자원으로서의 가치'밖에 없어진 나라...

그 불행한 역사 속에서 등장한 뒤틀어진 <기독교> 성전의 거대한 건물과,
사랑을 모르고 범어사를 멸망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걸 '종교'라고 일컫는 목사와,
오로지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는 게 목적인 여자들로 가득한 '드라마'라는 아편과,
마약과 환각제를 통제하는 바람에 '음주'를 통한 엑스터시를 겪는 음주 고통과,
그리고 '돈, 돈, 돈'만을 위하여 홀딱 벗고 설치는 밤거리의 젊은 여자들의 나라...
권위주의, 억압의 사회적 구조와 군대가 찰떡 궁합을 이룬 부자유의나라...

아이들은 사랑과, 자유와, 경험의 소중함을 배우지 못하고,
아파트라는 단절된 공간과 사이버 세계 내에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삶에 매몰되고,
학원과 학원의 체인을 도는 다람쥐가 되어버린 희한한 나라...

그가 본 대한 민국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는 미친놈이기때문에 '미친 나라'가 미친 걸 안다.

점잖은 한국인들은... 이 나라가 미쳤다는 걸, 모두 부인하고 싶겠지만...

비숍 여사가 쓴 글을 보면, 한국이 가진 부정적 면이 외국인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지를 읽게 해 준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한국인들을 세계에서 제일 열등한 민족이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고 그들의 상황을 가망 없는 것으로 여겼다..."

한국에서 발행되는 한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번듯한 영어 잡지가 눈 씻고 찾아도 없다느 사실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145) 그건 그의 말이 맞다. 그가 그런 일을 해 주면 좋겠다.

한류 산업에 대한, 아니, 한국 문화의 지나친 '섹스 일변도 의존'에 치우친 그의 분석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살펴야 할 것 아닐까?

병든 곳에는 반드시 '약'이 필요하다.
플라시보 효과로 '그래, 좀 더 잘 하면 잘 될거야...' '아, 아, 대한민국, 아, 아, 우리 조국, 영원하리라~~' 해서는 암종을 더 키우는 수밖에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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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1-10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대한민국... 부끄러움을 알기만 해도 희망이 있을텐데요...ㅠㅠ

글샘 2007-11-12 08:54   좋아요 0 | URL
부끄러움...
근대와 함께 척박하기만 한 이 땅에서 잃어가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도...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전엔 있었는데... 당당한 건 좋은데, 내용없이 당당하면 싸가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