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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섭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임금이 승하하고, 새 임금이 발표된다.
무기력한 '내'가 임금이 된다. 그의 이름은 단백.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 아니다.
다만, '제왕'이란 존재에 대한 쑤퉁의 고찰이랄까... 쑤퉁으로서는 심혈을 기울인 작품일는지 몰라도, 별로 재미는 없다.
얼마 전 영화로 본 '궁녀'의 주제랑 많이 겹친다.
킹 메이커로서의 주변인들의 권력 다툼에 짓눌린 '제왕'의 실상은 보잘것 없기만 하다.
그가 결국 제왕의 자리에서 밀려나 줄타기 광대의 왕이 되어버리는 비유도 우습지만, 그가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비밀이 더 제왕의 자리를 희화화시켜 버린다.
그는 제왕의 자리에서 밀려남으로써 삶과 새로운 인생의 '왕'자리에 오르게 되고,
그를 밀어낸 단문은 제왕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죽음을 맞게 된다.
어린 시절 내시와 옷을 바꾸어 입고 역할 바꾸기 놀이를 했다가 그는 깜짝 놀란다.
그가 제왕이었던 게 아니다. 그가 입은 옷이 제왕이었던 것이다. "환관의 누런 옷을 입고 있으면 나는 어린 내시에 불과했다. 금관과 용포를 걸치고 있어야만 비로소 제왕이었다. 그것은 아주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고 쑤퉁은 쓴다.(98)
세상이 인간에게 남긴 '낙인'을 이겨내는 방법을 그는 알아 냈다.
"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 따위는 들은 척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늘 높이 매달린 줄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주검과 고깃덩어리처럼 이 풍진 세상의 먼지 구덩이 속을 뒹굴고 있었다. 내가 저 높은 줄 위에 올라서 줄을 타기만 하면 비로소 땅 위위 숱한 사람들을 다시금 경멸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들고, 다스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이리라."(309)
"사람들이 하나같이 욕망을 좇아 움직이고 돈 냄새가 코를 찌르는 향현 거리에서 나는 내 인생을 완전히 둘로 가르"(321)게 된다.
그는 '구경거리로는 남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것 만한 것이 없다'(328)는 것을 깨닫고는 삶의 나침반을 바꾸는 데 성공하는 인물이다. 제왕이었던 그가 마지막까지 안고 다니는 책이 '논어'다.
그 논어는 '어떤 날은 이 성현의 책이 세상 만물을 모두 끌어난고 있다고 느꼈고, 또 어떤 날은 거기에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느꼈다.(353)'고 쑤퉁은 쓴다.
책에대한 가장 솔직한 표현 아닌가? 모든 고전이 그런 거 아닐까?
쑤퉁은 중국의 '제왕'데 대한 추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제왕학'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모델일 듯 싶다. 그런데... 형상화에 성공해야 하는 소설이 추상화에 성공하고 있어 별로 재미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