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시초
루미 지음, 이현주 옮김 / 선우출판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장래가 없단다.
옳은 말이다.
우리에겐 아주 참 잘된 일이다...

장래가 없단다. 옳은 말이다. 그게 참 잘된 일이라...
그렇게 판단하고 칼로 뚝 잘라서 고뇌하는 체 하며 살지 말란 뜻이렷다.

뒷표지에 이런 글이 있다.

세상은 아름답고 착하다.
오래 살려고 애쓸 것 없다.

그런가... 내 한 몸 오래 살려고 애써봤댔자, 아름답고 착한 세상에 어떻게도 할 수 없긴 하다.
애쓰는 게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게지. 장래가 없고, 오래 못 사는 것이 우리에게 참 잘된 일일지도...

물고기는 성스런 물을
잔에 담아 마시지 않는다. 그들은
거대한 액체 자유를 헤엄친다.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으냐. 좀 더 마시려고 다투지 말고, 좀 덜 마셨다고 맘 썩지 말고, 그냥 자유롭게 사는 거... 너무 노숙인스럽다고? ㅎㅎㅎ 하긴 성자들이 좀 노숙인처럼 생겼긴 하지.

나는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데
이 큰 사랑이 어떻게 내 몸안에 있을까?

네 눈을 보아라. 얼마나 작으냐.
그래도 저 큰 하늘을 본다.

스스로가 초라한 날이 많다. 살아온 날들은 길고 긴데, 남은 날들은 막막하다.
앞날이 어두워보이고, 하루하루 살기가 쉽지 않다.
루미를 읽는 일은 그래서 밝음을 얻는 일이다. 저 큰 하늘을 보는 작은 눈을 가진 나를 밝혀 보는 일.

시 한 편 짓고나면 내 형편이
늘 이렇다.
거대한 침묵이 나를 뒤덮고
도대체 나는 어쩌자고 언어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던지, 의아스럽다.

그렇지. 무슨 생각을 해도, 그걸 글로 써 버리고 나서도,
스스로를 생각해 보면, 왜 언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지... 한탄스럽다.

간혹 루미를 만나는 일은 13세기와 21세기의 간격을 후루룩 뛰어넘는 계기를 준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새초롬하게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루미 시집을 만나면 내 마음은 정말 오래 바라던 친구를 만난 마음으로 들떠 심장이 마구 뛴다. 오늘 그랬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읽으며 가고 오는 동안... 심장이 마구 뛰었고, 이유없이 행복했다.

루미를 기대하지 않던 모퉁이에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만난 날...
조금 쌀쌀맞은 날씨였지만 실실 웃음이 나게 하는 중독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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