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지금은 부유하지만 앞으로 가난해질 때를 위해, 또는 전에 좀 잘 살았는데 지금은 가난해진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쭉 가난해 왔고, 한번도 부유한 삶이란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안빈낙도'를 가르치는 일처럼 웃기는 일이 또 있을까? 가난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도를 즐기는 삶... 월든 호숫가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던 이도 가난한 이가 아니었고, 의사였으며 오토바이 여행을 즐겼고, 죽을 때 롤렉스 시계를 차고 죽은 체 게바라도 가난한 이는 아니었다.

처절하게 가난한 이는 이미 모든 걸 뼛속 깊이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이 자기 앞에서 불가능으로 닫힌 문이라는 것들을... 그래서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들을...

그러나, 가난해졌을 뿐인 사람에게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친하던 친구 녀석이 십오 년 쯤 전에 교장이랑 싸워서 들어 누웠던 적이 있다.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와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쳤는데, 문제는 신경림의 시였다. 교장은 왜 아이들에게 가난같은 부정적인 것을 가르치냐고 난리를 떨었고, 무식한 내 친구는 부르르 떨다가 병이 나서 한 달을 휴직했단다. 나를 만나고 그 친구는 더 부르르 떨었다.
그 때 이미, 그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시였다고 하고 나서는...

하긴 나도 신경림의 시를 중1 시험지 말미에 적어 두었다가 교장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적이 있다. 시 끝에 '중학 국어 2-2 교과서에서'하고 적었더니 고사 담당 교사에게 정말 이 시가 교과서에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는 후문이었다. 정말 무서운 시절이었다.

도대체 그들에게 '가난'은 어떤 아이콘이었기에, 저토록 눈에 불을 켜고 그걸 가르치는 일을 저지했을까?

그들에게 가난은 '쌍놈'의 아이콘이고, 지식인은 '양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교사는 양반과 쌍놈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가난'에 대해 가르치면 안 되는 거였다.
특히나 교사가 '노동자'와 마찬가지인 '쌍놈'의 단체에 가입하겠다는 데엔 미칠 노릇이었던 모양이다. 그들 자신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본적지를 철저하게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유럽의 땅에서 비롯된 이런 책들은 가난을 아는 나같은 세대엔 어울리지 않는 책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먹고 사는 일과 자기 미래에 먹구름부터 보고 자랄 필요는 없는 요즘의 아이들에겐 이런 책이 좀 필요할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거품 경제 시대에 태어나서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자기들이 자라고 보니 일자리 구하기도 어렵고 세상은 온통 명품 투성이인데 내겐 그런 명품들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을 아이들에게는... 아주 조금은 소용에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대한민국의 토지를 1%의 인구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니 그 후예들에겐 이 책이 읽힐 법한 책이나 아닌지 모를 일이지. 영국이나 프랑스, 벨기에나 네덜란드처럼 노예와 식민지들로 가득했던 너무너무나도 행복했던 '그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이 책은 읽힐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강하게 든다.

오랜만의 여가 시간... 뭘 할까?하는 물음에 '먹으러 가기'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결과물'은 같을는지 몰라도, 가난하게만 살아왔던 이들과 이제 막 가난해진 이들 사이의 생각 차이는 하늘과 땅, 아니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영원만큼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어두운 생각이 가득하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별을 많이 주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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