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책 제목도 딱딱해 보이고, 내용도 재미없을 듯한 책이지만...
정말 재미있고, 술술 읽을 수 있는,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유념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책의 뒤편에 '번역 없는 사회에는 미래도 없다!'는 섬뜩한 말이 적혀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표지는 마치 추리소설이라도 되는 듯 뻘건 색이다.^^

한국어는 외국어를 제대로 옮길 여유가 없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과거 탓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계통이 비슷하다보니, 이미 200년의 역사 속에서 이뤄진 번역 선진국 일본 문화의 힘에 압도된 탓이 크겠다.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번역하는 문제점. 또는 일본인이 이미 번역한 말을 음으로 그냥 읽어버리는 문제점 등.

이제 먹고 살만해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학문 풍토는 어디든 척박하다. 연구자들은 8할이 바람에게서 배운다. 지도교수의 도제가 되어 따까리 노릇이나 하고 앉아서는 제대로 된 연구 나오기 어렵다. 게다가 되도 않은 짜깁기를 논문이라고 생각하는 풍토도 개탄할 만 하다.

80년대 출판의 러시를 이루던 시대. 읽어도 읽어도 뜻을 모르겠던 난삽한 번역서들은 번역의 문제점들의 본산이었을 게다. 사회과학  서적이야 젊은 학도들이 날림으로 번역했다 치더라도, 그 이전부터 유명 교수들의 이름을 달고 나오던 온갖 고전들이나 명작들의 번역에 대한 교수-대학원생의 종속 관계를 저자는 공모적 아닌 착취적 관계로 읽고 일종의 범죄 행위로 본다.

한국에서의 출판 풍토가 범죄의식없이 이뤄지는 문제들이 많음이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학문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고전들의 번역도 없는 현실에서 번역에 대한 문제점을 적실하게 기록한 책으로 보인다.

고전의 번역 같은 것을 학위로 주어야 한다는 의견에 나도 동감이다. 멋진 고전을 한 권 번역하고 나면 석사나 박사를 주어도 된다. 지금처럼 허섭쓰레기 학위 논문이 판을 칠 바에야...

번역에는 외국어 실력이 3, 전문 지식이 3, 우리말 구사 능력이 4가 필요하단다. 이 모든 것들을 두루 갖춰야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 이야기를 펼치다 보니 도서관 이야기와 독서 풍토 이야기까지 번져 나갔다.

나는 오히려 도서관 이야기와 독서 풍토, 출판 문화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지만, 이 책의 본류에서 조금 벗어난 감이 없지 않다.

이 책이 한국에서의 독서 풍토와 그 독서 인프라를 위한 번역의 문화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표지를 조금 더 씸플하게~ 제목도 좀더 친절하게 붙여 주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겁먹지 않고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의 근대와 번역이란 책을 수년 전에 읽은 기억이 새롭다.
다른 문화를 만나는 일을 자기 언어로 이룰 수 있는 일.
세느강 유람선에서 만나는 낯선 외국어 사이에서 한국어 설명이 나올 때 귀가 번쩍 열리던 신선한 충격이 이런 것 아닐까.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들 하는데, 위기는 잘 나가다 추락한 경우에 쓰는 용어다. 한 번도 잘 나가 본 적이 없는 인문학에 위기란 말을 쓰지 말라...는 신선한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번역을 '거인에 무등 탄 난쟁이'로 본 것은 탁견이다.(저자의 의견이 아니라 12세기 프랑스 수도사 말이란다.)
그래요, 우리는 난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 난쟁이는 난쟁이로되 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랍니다. 우리는 작지만, 그래도 때로는 거인들보다 더 먼 곳을 내다보기도 한답니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와 같아서 그 어깨로부터 거인들보다 더 멀리 많은 사물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우리의 시력이 예민하거나 우리의 재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거인다운 위대함에 의해 지탱되고 고양되기 때문...

모든 번역은 오역...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힘을 빌려 인간의 위대함을 누릴 수 있는 풍토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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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0-0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훌륭한 번역가들이 많이 나와 우리 문학작품도 노벨상을 받았으면...
어려울 것 같은데, 고3 딸 수능 끝나면 보라고 사야겠어요~~~

글샘 2007-10-03 12:11   좋아요 0 | URL
한국의 훌륭한 번역가들이 우리 작품을 멋지게 번역할 가능성은 적을 것 같습니다. 외국의 번역가들에게 우리 작품을 번역하도록 해야겠지요.
딸내미가 외고 다니나요? 그러면 나중에 한번 읽어 보도록 하세요.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와 '일본의 근대와 번역'도 함께...
면접 시험 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